‘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비 한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개화(開花)의 소망이 이보다 간절할 수 있을까. 항일시인 이육사의 시 ‘꽃’의 첫 연이다.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동방의 그때는 식민지 조국의 엄혹한 현실을, 빨간 꽃은 독립의 열망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조국의 광복을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 비유했다.
시련의 사유는 다르지만, 코로나 시절도 꽃을 향한 그리움은 일제강점기 못지않다. 개화 소식을 듣고도 꽃밭에 갈 수 없으니 오히려 더 안타깝다. 흐드러지게 핀 노란 유채꽃과 하얀 눈을 머리에 인 한라산의 눈부신 보색 대비가 그래서 더 처연하다. 제주의 유채꽃은 머잖아 또다시 뿌리 뽑히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봄, 일렁이는 제주 바다를 닮은 유채꽃밭의 노란 물결은 트랙터의 ‘유린’ 속에 덧없이 사라졌다. 제주뿐인가. 76만㎡에 달하는 부산 대저생태공원의 드넓은 유채꽃밭, 222종 16만 그루의 장미가 어우러진 강원도 삼척의 장미공원 등등. 꽃향기를 쫓아 사람이 몰릴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갈아엎거나 자르는 ‘학살’이 벌어졌다. 인간의 잘못이 부른 꽃의 ‘수난’이었다. 그런 일이 올해도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난은 이미 시작됐다. 졸업식 등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꽃 수요가 줄어 화훼농가가 꽃밭을 갈아엎어야 할 판이다. 고민 끝에 나온 대책의 하나가 전남 광주시의 ‘꽃 피는 명절 만들기’ 캠페인이다. 이번 설 연휴에 고향을 찾는 대신 친지나 친구에게 택배로 꽃을 선물하자는 것이다. 꽃만큼 아름다운 선물이 있을까. 그리운 사람에게 애틋한 마음도 전하고, 화훼농가도 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광주시는 더 나아가 매주 수요일을 ‘꽃이 있는 날’로 정해 꽃 무인 판매, 1인 1화분 키우기 등 화훼농가 지원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전북 전주시의 ‘1테이블 1플라워’ 운동도 눈길을 끈다. 광주, 전주시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노력이 돋보인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그녀에게 안겨 주고파/흰옷을 입은 천사와 같이/아름다울 그녀에게 주고 싶네’. 대중가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의 가사처럼 연인에게 장미를 선사하는 건 어떤가. 꽃 주는 날을 가사대로 ‘비오는 수요일’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또 연인에게 줄 꽃이 반드시 장미일 필요도 없다. 비대면 시대, 꽃마저 향기 없는 ‘화상 눈요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우리의 공감이 최선의 고려 요건이 아니겠는가.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