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선이 ‘지구촌 평화 제전’이라는 서울올림픽 개막에 집중되던 1988년 여름. 미얀마에서는 우리의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케하는 군사 독재정권의 시민 살육극이 펼쳐졌다. 1988년 8월 8일 당시 수도였던 양곤에서 대학생들 주도로 네윈 장군의 군사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시작됐고 공무원, 승려, 교사, 병원직원 등 시민들까지 동참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됐다. 군사 정권의 무차별 실탄사격에 최소 3000명이 사망했지만, 국내에서는 아는 이가 드물었다. 서울올림픽 개막(9월 17일) 다음 날인 9월 18일까지 41일 동안 계속된 이 시위를 일컬어 ‘8888 항쟁’이라고 부른다.
아웅산 수치가 전면에 부상한 때도 ‘8888 항쟁’ 기간이었다. 영국 망명 도중 같은 해 4월 어머니 병 간호를 위해 일시 귀국한 상태이던 그는 8월 15일 첫 대중연설을 시작으로 길고 험난한 민주화 운동 여정에 돌입한다. 아웅산 수치는 이듬해인 1989년 7월 가택 연금 조치를 당해 2010년까지 21년간 갇혀 지내게 된다. 군사 독재정권도 2015년까지 26년 더 연장된다.
다분히 1987년 ‘6월 항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미얀마의 ‘8888 항쟁’ 결과가 한국과 달랐던 것은 항쟁의 마무리가 판이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개헌 약속을 받아낸 한국과 달리 미얀마에서는 쿠데타 세력 내 또 다른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네윈이 아닌 다른 군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며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랬던 미얀마에서 이달 1일 다시 군사쿠데타가 발생해 혼란이 격화되고 있다. 최대 도시 양곤과 제2 도시 만달레이, 수도 네피도 등에서는 탱크와 장갑차 앞에서 현수막을 든 시민들의 평화적 반쿠데타 시위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만달레이 조선소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실탄사격으로 14세 소년을 포함한 2명이 숨지면서 국제사회가 더욱 긴장하고 있다. 자칫 ‘8888 항쟁’과 같은 대규모 유혈 사태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다만 희망도 없지않다. 33년 전과 달리 2021년은 인터넷과 SNS라는 개인들의 강력한 무기가 있어서다. ‘88 올림픽’ 당시에는 현지 언론통제로 세계인들이 소식을 알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시민이 기자인 시대다. 수많은 현지 네티즌들이 SNS를 통해 지구촌에 쏘아 올린 SOS 비상 구조 신호가 다급하다. “우릴 도와주세요. 미얀마를 구해주세요. (Help Us, Save Myanmar.)” 이제 세계가 응답해야 할 때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