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危機)’는 일반적으로 ‘위험한 고비’를 뜻하지만 실상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위험(危)과 기회(機). 양 극단의 상반된 의미를 함께 품고 있으니 가히 ‘두 얼굴의 단어’라 할 만하다.
세계사를 주름잡은 위인들 가운데도 일찍이 이 단어의 역설적인 매력을 알아챈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낙관주의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 위기를 본다”며 위기 속에 숨은 ‘기회’의 의미를 포착해 전쟁으로 인해 지친 국민을 독려했다.
또 짧은 재임 기간 유독 많은 위기에 직면했던 존 F 케네디 제35대 미국 대통령도 “위기(Crisis)를 한자(漢字)로 쓰면 두 개의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위험, 다른 하나는 기회다”고 말하며 위기 뒤에 찾아오는 기회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곤 했다.
위험을 기회로 반전시킨 가장 극적인 주인공은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금신전선상유십이)”라는 비장한 명문을 남긴 이순신 장군이다. 위험 한 가운데서 기필코 기회를 잡겠다는 굳은 결의의 정수(精髓)라 할 것이다.
이렇듯 역사는 위험(危)을 넘어 기회(機)를 만들어 낸 수많은 위기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래서 때로는 위기가 곧 기회의 전조(前兆)인 듯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위기의 역설’이다. 그렇다면 전대미문(前代未聞), 미증유(未曾有)라 일컬어지는 코로나19 위기 속 부산은 어떨까?
지난해 2월 21일 부산에서 첫 환자가 나온 후 부산의 확진자 수는 3000명(21일 현재 3149명)을 넘어섰다. 또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지역경제에 부는 바람도 더 매서워지고 있다. 생산 소비 고용 등 실물경제 지표는 크게 하락했고 일자리도 전국 대비 3배 이상 가파르게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탈부산 현상까지 가속화해 인구 340만 명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코로나19가 유독 부산에 더 가혹했던 셈이다.
그러나 부산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 속에서도 부산만의 감염병 위기 극복 체계를 구축하며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다. 또 향후 100년을 좌우할 굵직한 미래사업도 착착 진행시키며 위기 속에 기회를 만드는 저력을 발휘했다.
북항 재개발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한 2단계 사업을 출항시켜 상전벽해의 미래를 예고했다. 생산 유발 43조 원, 취업 유발 50만 명이라는 경제효과와 함께 부산의 발전을 50년 이상 앞당길 메가 이벤트인 2030월드엑스포도 명실상부한 국가사업이라는 브랜드를 달았다. 또 무려 32년 만에 지역민의 염원을 담은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할 동남권 메가시티 조성도 시동을 걸게 되었다. 이뿐인가? 부산 발전의 큰 날개가 될 가덕신공항 건설도 본궤도 진입을 위한 디딤돌을 놓으면서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처럼 부산은 코로나19의 위험 속에서도 기회를 향한 크고 단단한 도약대를 마련했다. 재난 속에서 마련한 소중한 성과를 발판 삼아, 이른바 ‘위기의 역설’을 증명해 보일 결정적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는 무성하고 긴 앞머리를 가졌지만 뒷머리는 없다고 한다. 게다가 언제고 훌쩍 날아 달아날 수 있도록 발에는 날개까지 달렸다고 하니 한번 놓쳐 버린 기회는 그만큼 잡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굳이 옛 신화가 전하는 지혜의 말을 꺼낸 이유는 우리에게 온 기회가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위기는 곧 기회의 전조’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은 채, 마냥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필코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머뭇거리면 더는 자랑스러운 부산의 이름을 지킬 수 없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회를 잡기 위한 대변혁에 시동을 걸고, 부산 대도약의 큰 문을 열어야 한다. 2021년 부산이 ‘위기의 역설’을 증명해 보이자!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