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시작한 지 이제 5개월 되었습니다. SUV로 차를 바꾼 사촌 동생이 이전에 타던 경차를 넘겨주어서 하게 된 운전이었습니다. 대중교통도 마음 편하게 이용하기 힘든 시대에 수업을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종일 돌아다니는 언니가 꽤 마음에 쓰였나 봅니다. 부랴부랴 자동차 보험부터 든 후 동생을 옆에 태우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2종 스틱, 장롱면허 20년 끝에 신분증으로만 쓰이던 운전면허증이 드디어 제빛을 발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D는 주행, R은 후진, P는 주차. 간단한 기본 조작법도 기억이 안 나더군요. 왼쪽 페달은 브레이크, 오른쪽 페달은 엑셀. 브레이크에 발을 두고 천천히 주행할 것. 동생과 운전 고수인 친구들에게 며칠 더 운전을 배운 후 시작한 ‘혼운’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이드 브레이크 안 내리고 출발하기, 왼쪽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기, 차로 변경 못해서 도로에서 멈췄다가 뒤차 놀라게 하기부터 연석 올라타기, 후진 주차하다 혼자 박기까지.
초보 운전 석 달째, 운전에 재미를 좀 들이던 때에 첫 접촉사고가 납니다. 오른쪽 길에서 큰 도로로 합류하던 차가 직진 중이던 제 차의 오른쪽 범퍼를 박은 것입니다. 정신이 쏙 나간 저는 갓길에 차를 댔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는 우선 뒷목부터 잡고 내리며 잘했든 잘못했든 일단 큰 소리부터 쳐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 우선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차에서 내렸습니다. 상대 차주는 중년의 남성이었습니다.
“아저씨가 무리하게 끼어들었구요. 저는 파란 불에 직진이었어요. 이런 경우 백프로 상대 과실입니다.” 저는 스크래치가 심하게 난 제 차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쏘아 붙였습니다. 더 큰 소리로 맞받아칠까 싶어 내심 조마조마해 하는데 돌아온 말은 의외였습니다. “몸은 괜찮아요?” 당황한 제가 우물거리자 상대 차주는 “사람 안 다쳐 다행입니다”고 덧붙였습니다.
본인 과실 인정하니 공업사에 견적낸 후 연락 달라며 명함을 건네는 상대 차주를 믿지 못해 저는 전화까지 걸며 번호를 확인했고 차 수리비를 송금받을 때까지 불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송금받은 돈이 견적보다 2만 원 더 많았습니다. 수리비를 더 보냈다고 하는 제게 상대 차주는 “초보던데 사고 나서 많이 놀랐죠. 미안합니다. 식사비로 좀 더 보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답장할 생각도 잊고 한참을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음이 큰 물결처럼 출렁거리며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운전은 사람이 하는 일임에도 저는 사람보다 차를 먼저 보았던 것입니다. 스크래치 난 차를 들여다보며 누구 과실이 더 큰지를 생각하느라 상대 차주가 얼마나 놀랐고 혹 다치지는 않았는지를 먼저 살피지 않았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상대 차주였지만 정작 대처에 성숙하지 못했던 사람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낯이 부끄러워 혼자인데도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개인 택시를 몰던 아버지는 모범 운전자였습니다. 제가 운전면허를 따고도 차를 몰지 않았던 건 운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아버지의 큰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운전은 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차보다 사람을 생각하고 앞서 가려고 애쓰지 말고 서로 배려해야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염려를 잊은 채 저는 못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상대 차주에게 감사와 반성의 답신을 보냅니다. “양산에서 인쇄소를 하시는 차주님. 큰 소리부터 쳐서 죄송했습니다. 더 좋은 운전자가 되겠습니다.”
사람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게 비단 운전뿐일까요. 늦은 택배에 짜증부터 내기보다는 밤늦은 배송에 지친 택배 기사의 고단함을 살피고, 잘못된 계산을 따지기 전에 혹 내 착오가 아닌 지부터 확인해야겠지요. ‘초보’ 스티커를 붙인 경차를 타고 오늘도 달립니다. 깜빡이에 기다려주는 옆 차선 차, 골목길을 빠져나가게 도와주던 맞은편 차, 주차를 할 동안 기다려주던 뒤차. 모두의 배려 덕분에 잘 달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이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