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청와대의 움직임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흘 연속 강도 높은 메시지를 쏟아냈다. ‘국토부·LH 직원 및 가족 등에 대한 전수조사’(3일), ‘부패 구조 발본색원 및 근본대책 마련’(4일)에 이어 5일에도 ‘청와대 참모와 가족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사흘간 수위를 높여가며 계속 반응한 게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만큼 사안의 폭발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부동산 문제로 민심 이반이 심각한 마당이다. 게다가 문 정부가 기치로 내건 ‘공정’ 가치까지 뿌리부터 허물어버리는 악재이기도 하다.
지난 2·4 부동산 대책은 문 정부 들어 25번째였다. 앞서 수많은 처방에도 집값을 잡지 못하자 ‘공급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공급을 늘리는 특단의 방안이었다. 그러나 그 핵심인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에 공공기관 직원들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 의혹이 불거졌으니 또 한번 정책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다. 정책 기조까지 바꿔가며 심혈을 기울여 내놓았다는 대책이 흔들릴 지경이니 청와대의 당혹스러움을 짐작할 만하다. 더구나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불과 한달 앞둔 시점 아닌가. 부동산 실책으로 떠난 민심을 겨우 붙잡나 했는데 선거 코앞에 더 심한 메가톤급 악재가 터졌다. 청와대가 긴박하게 돌아간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인식은 한심하다 못해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과 관련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보다 못한 문 대통령이 변 장관에게 “이 문제에 비상한 인식과 결의를 가지고 임하라”고 질책할 정도였다. 한 국토부 고위 간부의 발언도 장관과 별 다를 바가 없다. “투기라면 (광명·시흥) 밖을 사지 왜 그 안을 사겠나. 주변 시세가 많이 오른다. 구역 안으로 들어가면 다 수용돼 별 볼일 없다.”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투기를 두둔하는 황당한 발언은 국민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주무부처 장관과 고위 간부 인식이 이러니 부동산 투기가 잡힐 리 만무하다. 산하기관 직원들이 교묘한 수법으로 불법을 저지르는데도 실태 파악은커녕 두둔까지 하는 판국에 어떤 정책을 믿을 수 있겠나. 정부 부동산 실책의 핵심은 불공정이다. 그간 수많은 정책에도 서민이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절망감이 분노의 요체다. 그런데 정작 이를 해소하겠다는 정책마저 못 믿을 지경이 돼버렸다. 네티즌 사이에서 “재개발, 신도시 집어치워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젠 분노마저 사치인 듯하다. 더 뭘 기대할 게 있느냐는 자포자기 심정이 대다수이지 싶다.
이미 정책 신뢰도는 떨어질대로 떨어졌지만 선거를 앞두고 이탈하는 민심을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다. 문 대통령의 세 차례 지시에 정부 부처는 바삐 움직였다. 이어 지난 7일 정부는 홍남기 부총리 주재로 회의 뒤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공직자 부동산 비리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내부정보 이용 등 4대 교란행위를 가중처벌하겠다는 게 골자다. 정세균 총리는 ‘불법 비리 공직자는 패가망신할 정도로 엄히 다스리겠다’고까지 했다. ‘패가망신’이란 극단적 용어까지 동원하며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보선을 앞두고 민심 붙잡기에만 급급해 설익은 정책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청와대 국토부 산하기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겠다는 전수조사도 요란하게 호들갑만 떨다 유야무야 될 공산이 없지 않다. 이 또한 보선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하루빨리 결과를 내놓겠다는 것도 미덥지 않거니와 실효성마저 의문이 큰 탓이다. 수많은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등에 대한 조사를 위한 동의가 필요하지만 벌써부터 반발이 나온다. 정부가 제대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제대로 조사해 이런 의구심을 불식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수조사도 재발 방지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이게 결코 근본 해결책일 수는 없다.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계속되는 한 양상만 달리 할 뿐,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숱한 정책 실패의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청와대의 다주택 참모들마저 ‘직 보다는 집’을 택하는 세상 아닌가. 오죽하면 이번 LH 사태와 관련해 일부에서 ‘걸린 게 문제’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이를 불식하려는 문 정부의 25번째 대책도 위기에 내몰렸다. 단순히 이번 보선이 문제가 아니다. 남은 임기 1년 문 정부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