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가덕신공항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과 같았다. “된다” 했다가 “안된다”고 번복하길 수차례였다. 하지만 가덕도를 콕 찍어 새 공항을 짓는 특별법이 정말 탄생했다. 20년을 허공에서 떠돌던 가덕신공항은 기존안 폐기에서 신규안 입법까지 불과 3개월만에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간 부산시와 시민이 들인 공을 감안하면 시사(市史)에 남을 사건이다. 그런데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지금, 가덕신공항 이슈는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한참 멀어져있다. 왜일까?
얼마전 본지가 부산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7가지 보선 현안 중 ‘가덕신공항’은 중요도가 네번째다. 지역 경제가 워낙 엉망인데다 이번 선거가 전임 시장의 성추행에 기인한만큼 ‘지역경제 활성화’나 ‘오거돈 성비위’보다 낮은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LH 땅 투기 의혹’보다 두단계나 밑이다. 신공항이 선거 자체에 영향이 없다고 답한 사람은 절반(49.5%) 가깝다. 다른 언론사 조사에서도 가덕은 줄곧 하위권이다. 우선은 수도권이나 TK에서 온갖 욕을 먹어가며 가덕도를 밀어붙인 여당이 답답할 것이다. ‘가덕에 신공항을 건설하면 모든 보선 표가 여당으로 쏠릴 것’이라며 ‘선거용 프레임’으로 가덕을 맹비난했던 수도권 언론도 머쓱해질 결과다.
지금 부산과 서울 보선판의 빅이슈는 LH 사태로 야기된 부동산 문제인 건 확실하다. 이 정부의 잇단 정책 실패와 집값 급등, 그 와중에 터진 공기업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던 민심에 불을 지를만한 스캔들이다. 특히 비수도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과밀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했던 3기 신도시가 하필 담당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놀이장이었다니 지역민으로서는 치가 떨릴 법하다. 부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LH 사태는 여권 전체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여야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개개인의 자질과 도덕성 높낮이를 따질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흔히 ‘선거는 바람’이라고들 한다. 큰 이슈가 생기면 자잘한 사안은 그냥 묻혀간다는 뜻이다. 김대업의 허위 폭로가 이회창 후보를 타격한 16대 대선의 병풍이 그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이 그랬다. 그러나 그 바람이 대선이나 총선이 아니라 내 고장의 시장이나 구청장을 뽑는 지방선거까지 휩쓸어 버리는 게 타당한가는 냉정히 짚어볼 문제이다.
돌이켜보면 3년 전 지방선거는 ‘지방 없는 지방선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1년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워낙 높았던데다, 선거 한두달 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연출한 일련의 남북 평화 무드는 국민 모두에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방의 목민관을 뽑는데 필요한 검증 작업은 그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당시 선거운동 기간 한 소수정당의 구의원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이런 분위기에선 선거운동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정말 맥이 빠진다”며 허탈해하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열악한 당세를 극복하고 한 지역구에서 재선까지 했던 그가 2위도 아닌 3위로 내려앉은 개표 결과는 당사자만큼이나 내게도 충격이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하도 못해서 민주당을 찍었더니 더 엉망이다.” 부산 시민 상당수가 공감하는 이 인식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렸다. 지난 선거 때 무조건 교체라는 격류에 휩쓸린 결과가 이번 보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그동안 부산에서 광역이나 기초단체장이 선거법 위반이나 비위로 물러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민선 6기까지 23년을 통틀어 여섯번이다. 하지만 7기에선 이미 중도사퇴한 시장과 당선무효가 된 중구청장에다 재판 중인 사상구청장까지 벌써 세명이나 나왔다. 부산시정은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이 있기 훨씬 전부터 비선 문제로 시끄러웠다. ‘남북 이벤트’라는 큰 파도에 무임승차한 후보들,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깜깜이 표를 던진 부산 유권자들의 합작품이다.
수도권에서 터진 LH 사태와 거기서 파생된 부동산 문제 때문에 가장 심각한 현안인 청년들의 부산 탈출, 이번 보선을 부른 성인지 어젠다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부산의 추락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경제 회생을 위한 정책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밉든 곱든 부산 사람들의 손과 발은 부산을 떠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게 지역 문제가 아니라는 이 괴리, 그 속에서 가덕신공항 이슈는 실종된 것이다. 공동체의 비전과 관심사가 구체화되고 방향이 설정되는 건 선거 과정에서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가 두려운 건 선거 후 당선자는 있으나 그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했는지는 아무도 기억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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