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은 ‘소폭’(맥주와 소주를 섞은 술)을 만들 때 가능하면 맥주잔과 소주잔을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맥주와 소주 모두 각 잔에 절반씩 따르는 것이 박 시장의 소폭 레시피다. 일행 중 다른 사람이 술을 탈 때도 맥주잔과 소주잔을 함께 건네고 혹여 ‘정량’을 초과했을 때는 가능하면 바로잡는다고 한다. 평소 수준급의 테니스와 농구 등으로 체력을 다져 온 박 시장은 술도 곧잘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폭 제조법에서 알 수 있듯 여간해서 과음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박 시장의 술 마시는 습관에서도 보수를 추구하면서 어느 정도 절제된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박 시장은 지난 7일로 취임한 지 꼭 한 달을 맞았다. 국민의힘 당내 경선을 포함하면 사실상 반 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의 선거 운동을 거쳐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시장은 이튿날부터 곧바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 당일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1호 결재한 박 시장은 요즈마그룹과 업무협약, 5개 시·도 공시가격 대응 공동 건의, 시·구군 협치회의, 대통령 초청 오찬 간담회, 상공회의소 정책 협력 간담회 등의 굵직한 일정을 소화하며, 장기간 수장 공백 상태이던 시정을 빠르게 정상화시켜가고 있다.
박 시장이 보여준 몇몇 장면은 그가 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별칭을 얻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경제부시장을 비롯한 정무특보 경제특보 등 고위급 정무직 인사가 대표적이다. 기존 전문 관료를 중용하고, 측근 기용을 최소화했다. 정무직 직원들의 업무 영역을 시장의 정무적 기능 보좌라는 본연의 역할로 되돌려놓는 ‘정무직의 정상화’도 이뤄졌다. 정무직이 관료 위에 군림했던 전임 시장 체제의 문제점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는 직업 관료를 믿고 시정 추진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잘못이 있을 때는 책임도 함께 묻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보수 진영 시장으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통합과 협치의 연장선이라고는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했던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꽤나 파격적이다. 다음 날에는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부산시당위원장, 국민의힘 하태경 위원장과 ‘부산미래와 시민에게 힘이 되는 부산시정 실현을 위한 여야정 협약식’을 가졌다. 시의 장기 표류 사업 해결을 위해 함께 손잡기로 한 것이다.
시 산하 25개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해서도 박 시장의 합리적 성품이 묻어난다. 정파가 다른 새로운 시장이 들어섰으면 전임 시장이 임명한 산하 공공기관장은 스스로 인사권자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일부 측근 그룹에서 기존 기관장이 물러나도록 다양한 수단으로 압박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만, 박 시장은 인위적 물갈이를 하지 않겠다는 애초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취임 후 한 달을 시정의 밑그림을 그린 기간으로 표현했다. 밑그림은 대체로 잘 그려진 것 같다.
다만 합리성과 신중함에 치중하다 보니 결단력과 과단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고위 정무직 인사에서 여론과 주변 눈치를 살피느라 오랫동안 함께해온 측근을 챙기지 못했다. 과감하게 측근을 기용하고 실적으로 평가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장 교체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 시장의 조심스런 행보는 1년여 후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고려됐을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제기된 박 시장 관련 의혹을 두고 벌써부터 당내 경쟁자들이 내년 선거를 준비한다는 얘기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해당 의혹 대부분은 적어도 실정법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얼마든지 정면 돌파를 통해 헤쳐나갈 수 있다. 박 시장은 지난 선거 내내 ‘내게 힘이 되는 시장’을 강조했다. 시민에게 도움을 주는 시장이 되겠다는 의미다. 남은 임기는 의식하지 말고 시민에게 힘을 주는 시장이 되겠다는 초심을 이어간다면 자연스레 한 번 더 일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