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파트너를 만나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은 생물학적 진화의 목표다. 남들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파트너를 차지하려는 본능이 하드웨어적으로 입력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문명’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러한 진화의 흐름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인류 진화의 본질이 더는 유전자 전달에만 있지 않은 이유다.
초창기 인류는 자연과 진화가 정해놓은 선을 넘을 수 없었다. 배고프면 사냥하고, 번식하기 위해 사랑하고, 나와 다른 이방인을 증오하는, 그런 본능에만 충실한 인류 말이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커진 인간의 대뇌는 농업·예술·종교 그리고 기술과 과학을 탄생시켰다. 조금 진화한 인류가 교육과 환경을 통해 ‘자연의 독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공지능과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이제 막 ‘제3의 인류’의 서막을 열고 있다. 문화라는 소프트웨어의 수준을 넘어 인간 본질의 하드웨어 그 자체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진화의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적 진보는 과연 온통 장밋빛일까.
컴퓨터 과학자 마빈 민스키는 인공지능을 ‘사람이 하려면 지능이 필요할 일을 기계가 하도록 만드는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기계가 과연 ‘지능’이란 것을 가질 수 있는지 철학적으로 따지려면 끝이 없겠지만 기계가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갖추고 사람이 하는 일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이와 함께 사람이 했다면 ‘끔찍하다’ ‘잔인하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 일을 정부와 기업은 은근슬쩍 기계에 시키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인간지능’이 되지 못한 ‘인공지능’의 한계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얼마 전 인지도가 높은 한 배달 전문 업체에서 인공지능이 기사의 근무평점을 매겨 등급과 급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교통사고를 당한 배달 기사가 사고처리를 위해 회사의 허가를 받고 휴식의 시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등급이 조정되어 큰 불이익을 받은 사건이었다. 회사 측에서는 인공지능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고, 알고리즘은 영업상 비밀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일주일에 단 6분, 화장실에 가는 것만으로도 등급은 조정된다. 일 처리에 빈틈이 없는 인공지능 평가자는 ‘재주껏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들의 등급은 ‘공정’하게 하향 평가될 것이다’는 비인간적 경고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무인화는 그것을 실시하는 기업이나 기관에는 업무를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을 뜻하지만, 인공지능이 사정을 봐주지 않는 어떤 이용자들에게는 차별과 해고, 나아가서는 절망을 뜻한다. 그 조처가 다양한 인간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공감 없이 인공지능 시스템이 더 나은 시스템이라는 성급한 결론이 이미 도출되어 있다. 그러는 중에 인간의 다양한 조건과 필요를 평면적으로 만들고, 표준적인 규격에 들어맞지 않는 인간을 배제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조급증처럼 보인다.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는 인정되어야 한다. 인간지능은 주체성을 띠며, 사회적으로 발달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일부 기능을 뇌에 위임했다. 그리고 더 나은 생존을 고민하기 위해 지능이 탄생했다. 여기서 ‘더 나은 생존’은 단순히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의 목적에 가까울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자신의 생존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존도 고려하는 존재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며, 그 관계를 고려한 사회적 판단을 내린다. 매 순간 자신만을 위한 최적화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공감 능력은 광대한 네트워크망이 지배하는 현시대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에 상상 불허의 영향력을 미칠 미래에도 여전히 가장 유효한 인류만의 생존 수단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보다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람의 관점에서 기계를 봐야 하는 이유며, 공감을 갖고 조금은 천천히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단테 에스프레시보!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