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술계의 화제는 단연 삼성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일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재산 상속이 문제가 되었고, 그중의 한 부분이 이건희 개인 소장의 미술품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국가에 기증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대부분의 현대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쪽으로 기증하기로 했다. 고미술품 중에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단연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명품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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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인왕제색도’. 국립중앙박물관 |
‘인왕제색도’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미술품을 수집하며 처음으로 소장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본래 ‘인왕제색도’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자 고미술 수장가인 소전(素筌) 손재형(1902~1981)의 소장품이었다. 그런데 1958년 손재형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느라 큰돈이 필요해 매물로 내놓으면서 주인이 바뀌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 미술사에 손꼽는 명품을 얻으며 수집을 시작하였으니, 좋은 수장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인왕제색도’는 조선시대의 다른 그림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의 특별한 작품이다. 이는 1751년 정선 나이 76세 때, 비 갠 후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것이다. 나무가 적은 바위산 인왕산이 많은 비로 물기를 먹어 바위들이 검은색을 띠는 데다, 굽이굽이 운무가 끼어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선은 이러한 인왕산 봉우리의 괴량감(塊量感)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기 위해 큰 화면을 사용했다. 조선시대 그림으로는 보기 드물게 세로 79.2, 가로 138.2㎝나 되는 큰 작품으로 정선의 그림 중에서 가장 크다.
그동안 미술계에서는 ‘인왕제색도’를 이웃에 살던 아픈 친구 이병연을 위해 그렸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이 이병연의 집이라는 설명을 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픈 친구를 위해 바로 그날의 풍경을 단숨에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를 위해 큰 종이를 준비하여 이런 완전한 구성의 작품을 하였다는 것은 뚜렷한 근거도 없고 논리적으로도 매우 허술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이병연에게 건네주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소장하다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작품을 또 그린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심스러운 견해이다.
‘인왕제색도’는 화가 정선이 평생 추구해 온 실경산수화에 대한 집요한 탐색의 결실로 정선 예술의 결정체이다. 그는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평생 수많은 그림을 그렸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구상하여 천하의 명품 ‘인왕제색도’를 이루어낸 것이다. 평소 화첩 그림이나 소품을 주로 해왔던 정선이 이렇게 큰 그림을 그렸고, 작품을 제작한 기년(紀年)을 정성스럽게 반듯이 적어 놓았고, 후손에게 물려 준 것으로 보아도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