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은 족히 9척은 되는 거인이었다. 놋쇠 투구를 썼고 비늘 갑옷을 입었으며 정강이에도 놋쇠로 된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갑옷의 무게만 수 백 근이 되었다. 그는 장검을 찼고 굵고 긴 창을 메고 있었다. 그의 방패 또한 무겁고 커서 그것을 들고 다니는 병사를 따로 둘 정도였다. 그런 골리앗이 이스라엘 진지 앞에서 싸움을 걸어왔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대적하겠다고 나선 양치기 청년 다윗에게 자신의 투구를 씌어 주고 갑옷을 입혔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 훌륭한 갑옷과 무기로는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없으므로 이들을 모두 벗어버렸다. 그리고 개울가에 가서 자갈 다섯 개를 고른 다음 돌팔매 끈을 갖고 골리앗 쪽으로 걸어갔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들어오던 이야기 아닌가. 이야기의 결론도 다 알고 있다. 다윗은 다섯 개의 돌을 다 쓸 필요도 없이 첫째 돌팔매질에 골리앗의 이마를 맞혔고,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진 적장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잘랐다.
이 유명한 성서 이야기는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절대 열세의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전형적인 알레고리로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에 비유하기도 한다.
나는 구약성서를 다시 읽을 때마다 우선 골리앗의 무장 상태를 묘사한 부분에 주목한다. 그는 체격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든 제압할 수 있는 거인이다. 그런데 엄청난 보호 장비로 온 몸을 감싸고 있다. 이에 더해 대형 방패까지 갖추고 있다. 그 정도 거인이면 사실 맨손으로도 상대를 박살낼 수 있다. 그런데도 무시무시한 창과 칼로 무장하고 있다. 무적의 신체적 완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마어마한 무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힘을 가진 자는 또 다른 힘을 더하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없는가 보다.
이제 다윗을 보자. 다윗은 간단히 말해 ‘알몸’이다. 어떤 보호 장비도 갖추지 않았다. 무기라고는 돌과 팔매질할 가죽 끈 밖에 없다. 청년 다윗에게 믿을 힘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저 ‘알몸의 생명력’ 뿐이다. 그것으로 무지막지한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기 민족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다. 미켈란젤로는 바로 이런 알몸의 다윗을 거대한 대리석상으로 묘사했다. 나는 그가 ‘알몸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석상을 실제 사람 크기의 몇 배로 제작했다고 믿는다. 내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처음 보았던 것은 유학 중이던 20대 후반이었다. 그 후로 여러 번 다시 보면서도 내게 이 작품의 숭고함이 대변하는 것은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알몸의 도전’이었다. 아마 나 자신도 젊음의 범주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젊음은 언제나 시대의 화두이다. 새로운 세대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니까 말이다. 다만 젊음과 새로움이 사회의 일정 분야에서 각별히 시대의 견인차 역할로 요구될 때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그런 경우이다. 이미 21대 총선을 계기로 젊고 새로운 정치인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초선 의원이 과반을 넘는다는 수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야당 대표 선거전에도 젊음과 새로움이 주된 관심사이다. 나는 이를 ‘청춘 정치’의 부상이라고 부른다. 청춘은 젊음과 새로운 시작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잘 보아야 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인간 영혼은 새로움을 향해 기운다”고 했으며, 근대의 여명기에 마키아벨리는 “항상 새로운 시작을 승인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성향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 무대에 젊은이가 등장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젊은이의 행동이 뭔가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에 대한 민중의 승인은 다른 이들의 행동에 대한 승인보다 강력한 경향이 있다. 모든 시민의 눈길이 그에게 쏠리게 되고, 그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를 치켜세우는 데 앞장선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젊고 새로운 인물이 관심을 끄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지, 그 인물의 자질과 능력이 검증되어 신임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해마시라! 나는 젊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적극 환영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피선거권의 연령도 40세 이상에서 미국처럼 35세 이상으로 낮추어야 할 때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제대로 된 ‘청춘 정치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청춘 정치인에겐 제 1조건이 있다. ‘전장에 알몸으로 나가는 용사’가 되어야 한다. 활력 넘치는 청춘에겐 자기 자신 외에 다른 갑옷이 필요 없다. 따라서 서둘러 ‘권력의 갑옷’을 입으려 하지 말라! 정치적 시각에서 골리앗이 권력의 갑옷에 억눌린 자의 메타포라면, 다윗은 권력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의 도전에 성공한 영웅의 상징이리라. 너무 이상적이라고? 천만에! 이 상징성을 모든 언행에서 구체화할 줄 아는 사람만이 고만고만한 도전자들 사이에서 경쾌한 도약에 성공할 것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