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도시빈민의 힘든 삶을 다양한 상징으로 담아내고 있다. 수직 사회구조의 하층민을 상징하는 ‘난쟁이’는 지상의 현실을 벗어나고픈 간절한 희망을 담은 ‘작은 공’을 쏘아 올려 보지만 중력이라는 집요한 부조리로 인해 번번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야기 ‘우주여행’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며 대입을 준비하는 ‘윤호’가 가정교사 ‘지섭’에게 이끌려 빈민촌 난쟁이네 가족을 만난 후 이해하기 어려운 ‘지섭’의 넋두리를 듣는 장면이 묘사된다. 일류대 법학과를 다니다 제적된 ‘지섭’은 날개가 퇴화해 멸종한 도도새 이야기를 꺼내며 지구는 끔찍한 세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토피아 같은 순수한 달나라를 그리워한다. ‘윤호’는 그날 밤 꿈에서 유리문을 두드리는 우주인을 보지만 잠에서 깬 현실 세상에서 난쟁이네 집이 철거되던 날 ‘지섭’이 피를 흘리며 들어온 이유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지섭’이 꿈꾼 달나라는 그 실현 불가능성이 오히려 현실과 대비를 이루며 비참함을 부각한다. 작가 조세희 씨는 기자 시절 재개발 지역 세입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던 순간까지 대문과 벽을 부수고 들이닥친 철거반과 맞선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현실의 부조리와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 이 소설의 작가정신이었다면 과학자는 조금 다른 방식의 길을 택하는 것 같다.
러시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한 소년은 열 살 때 성홍열을 앓은 뒤 청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교는 그를 거부했고 집에서 어머니와 지내며 기초교육을 대체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마저도 몇 년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이후 대부분 지식을 독학으로 익혔다. 잠시 모스크바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독한 가난은 그를 다시 시골집으로 불러들였다.
외력이 없는 우주의 허공 속에서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몸의 질량 중심이 늘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현실처럼 삶의 가속도는 등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일까?
게다가 비상을 꿈꾸는 지상 위 사람들에게는 매번 희망의 공을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중력까지 존재한다. 물리학 비전공자들도 대부분 외우는 ‘F=ma’라는 식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뉴턴역학의 핵심은 운동량(p=mv)에 있다. 힘(F)은 속도(v)의 시간적 변화인 가속도(a)뿐 아니라 질량(m)의 변화와도 관련될 수 있다. ‘F=ma’는 질량 변화의 가능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비참한 현실을 통해 ‘지섭’이 꿈꾸던 곳이 달나라였다면 들을 수 없는 그 소년에게 장애와 가난을 넘어선 유토피아는 우주였다. 작가에게 시대의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글과 문학이 있다면 그에게는 수학이라는 언어와 물리학이 있었다. 대부분 생을 시골 학교 교사로 지내며 무명의 연구자로 홀로 연구한 금속 재질의 우주로켓, 지구와 우주 공간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공기역학적 바람의 터널, 실용 로켓의 지구 탈출 속력 같은 업적은 훗날 우주항공분야의 아버지로 추앙받을 만큼 독보적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그의 이름이 붙은 ‘치올콥스키 방정식’이다. 이 식은 로켓의 핵심 원리를 담고 있다. 허공 속에서도 자신의 질량을 뿜어내면 외력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가속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 수식 속에는 평생 홀로서기를 익힌 그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치올콥스키 방정식’은 단순히 추진력의 물리현상을 설명한 것이 아니다. 내면화된 삶의 경험을 수학의 언어로 압축한 시(詩)에 가깝다. 그의 공식은 중력처럼 집요하게 자신을 붙잡았던 지상의 장애와 가난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쏘아 올린 희망의 공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공은 후손들이 우주 시대를 실현시킬 만큼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김광석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