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하다. 장항석의 ‘판데믹 히스토리’는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온 것부터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덩치 작은 인류가 천적으로부터 몸을 피하기에는 나무 위가 좋았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는 현재도 원숭이들이 겪고 있는 여러 세균성 질병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류는 고온다습한 숲을 피해 세균성 질병이 적은 건조한 초원으로 진출하고, 이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진화를 거듭한다. 초원에 적응한 원시 인류는 다시 인구 급증과 이에 따른 생태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질병에 시달린다. 체체파리는 원시 인류 때문에 초원에 먹을 것이 줄어들자 인류에 붙어 치명적인 질병을 퍼트린다. 그래서 인류는 초원을 떠나 각 대륙으로 흩어졌다. 농업혁명은 여기에 팬데믹의 방아쇠를 당겼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천연두 홍역 결핵 같은 대부분의 전염병은 가축에 기원을 두고 있고 이것이 농업혁명 이후 사람에게 옮겨졌다고 이야기한다.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이야기이다. 최근에도 우리는 희극에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난 인수공통감염병 사례를 알고 있다. 2003년의 사스도, 2015년의 메르스도 2020년의 ‘코로나19’도 모두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옮겨온 인수공통전염병이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의 보고서는 새로운 질병의 75%가 동물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수공통전염병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발생 주기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 마이클 홈 감염병연구센터장은 ‘살인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장담하건대, 코로나19 이후 대규모 전염병이 또 발생할 것이다. 규모는 더 클 것이다. 5000만~1억 명이 목숨을 잃은 스페인 독감만큼 큰 충격을 줄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보건의료는 이미 ‘원 헬스(one health)’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 환경의 연계를 통해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부산지역에 현재 가장 모자라는 전문가는 수의 인력이다.
부산지역의 문제는 광역자치단체 중 수의 인력의 수요는 가장 많지만 지역 내에서 공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지역 대학들 가운데 수의인력 양성을 하는 수의과대학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당연히 기초적인 연구는 물론 산업적 연구를 위한 인력 공급도 되지 않는다.
최근 화제의 중심인 화이자 백신을 개발한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도 수의사 출신이다. 화이자는 연평균 50조 원의 매출을 올려왔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백신 하나만으로도 30조 원 정도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2020년 부산시 총예산 13조 7000억 원의 2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그리스 출신인 그는 모국의 대학병원에서 동물의 체외수정 인공수정 배아이식 등을 연구하다 1993년 미국 화이자의 수의학 기술부장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수의학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개는 사람처럼 치매에 걸리는 유일한 동물이다. 개가 치매에 걸리면 주인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고 기억도 잃어버린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 개의 치매약이 출시되었다. 다음 단계는 이 약의 성분들이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의학은 동물복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대단히 유망한 학문이다.
수의사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방역이다. 코로나19 조류독감 사스 메르스 등 인수공통전염병 관리와 역학연구 예방 방역 검역 등이 모두 수의 인력들의 업무이다. 우리가 먹는 각종 축산물과 어패류등에 대한 위생검사와 안전성 관리를 통해서 부산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도모하는 것도 수의사의 책무이다.
그러나 부산의 공중방역 수의사는 겨우 2명이다. 정원보다 20명이나 모자라고 현재 인원도 경기 50명, 전남 55명, 경북 49명 등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들만으로 부산항과 김해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동물이나 축산물의 검역을 담당하기는 태부족이다.
지난 4월 일본은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전 오염수를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수입금지 조치에도 지난 4월까지 원산지를 속인 일본 수산물 수입만 벌써 16건이다.
일본이 방류하는 원전 오염수에는 삼중수소를 비롯해 인체에 치명적인 세슘-137, 스트론튬을 포함한 방사능 물질 62종이 잔존해 있다. 원전 오염수 방류가 바다 생태계와 수산물에 실제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지금 시점에서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코로나19 이후에도 새로운 팬데믹이 우려되는 지금, 동물바이오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지금, 수입 축산물과 수산물의 공포가 밀려오는 지금, 이에 대한 전문인력의 확보는 절실하다. 시민의 건강만이 아닌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