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36세 0선 제1 야당 대표는 한 달가량 만에 현실이 됐다. 예비경선 과정에서 ‘이준석 돌풍’이 불면서야 자신도 이게 현실화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터이다. 당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낼 때만 해도 청년층 등 변화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 정도를 기대했을 듯하다. 하지만 미풍은 시간이 흐를수록 태풍이 됐고, 국내 정치사를 새로 쓰며 거대한 화두를 모두에게 던졌다. 정치판의 세대교체와 변화를 열망하는 민심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돼 버렸다. 비단 제1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과 국내 정치권 모두가 숨 죽이며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이유다.
제1 야당의 이런 상상 못할 변화에 여당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선을 앞두고 변화와 혁신이라는 이슈를 선점당한 당혹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그 변화에 불을 지피고도 믿어지지 않을 곳은 국민의힘이지 싶다. 분명 대선에 이만한 호재가 없는데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지 아직은 실감하기 힘든 모양새다. 버거울 정도로 걸판진 잔칫상을 받아 들긴 했지만, 잔치를 훌륭히 끝내야 할 막중한 일들이 산적한 까닭이다. 몰락했던 보수가 기적적으로 회생의 갈피를 잡긴 했으나, 이를 잘 갈무리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힘에게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은 이제부터인 셈이다.
이 대표 또한 이를 잘 알기에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다.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고,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입니다.” 30대 0선에 불과한 자신의 생각이 아직은 설익고 생소한 만큼 오랜 시간 당과 함께한 전통적 당심의 변화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을 것임을 예상한 대목이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동참해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는 핵심 가치로 공존을 강조했다. 그렇게 등장한 게 ‘비빔밥론’이다. “비빔밥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상태는 고명이 각각 먹는 느낌과 맛, 색채를 유지하면서 밥 위에 얹혀 있을 때” “비빔밥의 재료를 모두 갈아서 밥 위에 얹어준다면 그것은 우중충한 빛일 것” “비빔밥의 고명들을 갈아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테레오타이핑, 즉 ‘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 던져야” 등등 비빔밥 고명 하나하나의 개성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의 지상과제인 대선 승리에 무엇보다 중요한 야권 통합을 위해서는 당 안팎의 여러 후보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가 야권 통합의 방법으로 ‘비빔밥론’을 통한 공존을 강조한 것이야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관건은 어떻게 그의 공존론을 당내에 설득시키느냐다.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대통합은 절체절명의 과제이지만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국민의힘 내부 의견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이를 둘러싸고 또 다시 계파 등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실제 이번 경선에서 당원 다수가 이 대표를 지지하긴 했으나 당내 중진 의견을 무시하고는 당을 이끌어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전체 득표율은 앞섰지만 당원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그가 전통적 보수당원을 등에 업은 중진과도 말처럼 쉽게 ‘공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뿌리 깊은 계파 갈등과 야권 통합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 등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그의 ‘비빔밥론’도 무용지물이 된다.
‘30대 0선 대표’ 체제 출범 자체야 우리 정치사에 유례 없는 획기적인 일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그 체제 자체가 곧바로 당내 변화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랜 웰빙 정당 체질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힘든 탓이다. 길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가깝게는 총선 참패 이후부터 안팎에서 쏟아지던 당 쇄신 요구에도 꿈쩍 않던 국민의힘 아니었던가. 4·7 재보선 승리에 이어 이번에 불어닥친 변화 바람도 여당의 잇단 헛발질에 따른 반사이익 덕이 크다. 그 변화를 향한 거센 민심이 이준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된 결과일 뿐이다.
너무 박한 평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장 최근의 일 하나만 보자.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를 감사원에 의뢰했다가 결국은 민주당처럼 국민권익위에 의뢰키로 했다. 감사원 조사 자체가 불가한 데다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거센 변화 바람이 불고 있는 당 대표 경선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꼼수 정치가 아직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벌어지는 당이 국민의힘이다. 그래서 익숙한 과거와의 결별에 앞장서야 할 이 대표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그의 말처럼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이 어떻게 발현될지 두고 볼 일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