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염병 코로나19가 느닷없이 온 세상을 덮쳐 오자 모든 일이 멈춰지고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별다른 할 일도 없어 그동안 바쁜 일상을 핑계로 등한시했던 유적 답사를 다시 시작했다. 우선 시, 군 단위로 지역 문화재를 조사, 선별하여 하나하나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서울 주변 경기 지역부터 시작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봐야 할 유적지가 너무 많았다. 전국을 다 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들지 예측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당분간은 경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권을 더듬어 보는 수순을 밟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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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산수문전’. |
우리나라는 불교 유적이 많아 주로 사찰 폐사지 불상 등을 찾아다니는 것이 답사의 주된 일이이었다. 이러한 유적들은 대부분 주변 환경이 아름다운 산 속에 있어 마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많았다. 특히 폐사지의 호젓함, 미륵 불상의 신비로운 표정 등은 지칠 법한 발길을 멈추지 못하게 끌어당겼다. 경기도의 여러 지역을 둘러보고, 충청 지역의 당진, 예산을 지나 아마 서산의 ‘백제의 미소’ ‘마애석불’을 볼 때쯤이었으리라. 어려운 시대 상황으로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홀로 걷는 내 모습이 마치 참회 도량을 찾아가는 수행자의 모습 같기도 하였다.
집에 돌아와 여러 자료를 들여다보다 유명한 백제의 ‘산수문전(山水紋塼)’을 보는데, 갑자기 그동안 보았던 백제의 모습이 이 작은 벽돌 안으로 모두 모여드는 것처럼 느꼈다. 지친 발길을 함께 했던 산 바위 계곡 나무 구름 등이 다 그 안에 있었다. 아래쪽으로는 우뚝 솟은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고, 하늘 위로는 뭉게구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화면의 중심을 이루는 나무를 이고 서 있는 봉우리들은 당시 사람들이 그리던 이상향 봉래산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향이 마치 우리 근처에 있는 산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금강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전에 보지 못하던 풍경 하나가 눈에 더 들어온다. 한 가운데 암자 같은 집이 한 채 있고, 우측 바위 앞으로 스님인 듯한 인물 한 명이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 그동안 산길을 걸으며 많은 유적을 찾은 경험 때문일 것이다. 과연 저 인물은 수도를 하러 신성한 곳으로 찾아가는 구도자일까? 아니면 속세를 떠나 자연 깊은 곳으로 찾아가는 자연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산수문전’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것을 보면 ‘산수문전’은 백제인의 삶의 지향을 보여주는 사상적 자료일 뿐만 아니라, 순연한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우러진 깊은 회화성을 띠는 미술품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