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의 후보지가 서울 두 곳으로 발표되면서 “문화분권”에 대한 논의가 격화되고 있다.
지난 4월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유족들이 고인이 생전에 수집한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기증한다고 발표한 후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기증품의 보관과 전시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전국 40여 지자체가 유치 희망을 표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후보지를 서울 내 2곳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해 발표했고 지역에서는 “또 서울이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균형발전 그리고 문화분권에 대한 관심과 주장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수도권은 지금 고도비만 상태이다”며 “경제와 문화의 지방 분산을 통해 건강한 국토 균형발전의 생태계를 만들고, 온 국민이 문화를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고 한 말과 정 반대되는 결과에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정책과 문화분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국립 문화예술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도를 보면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국립공연장과 미술관 11개소 중 55%인 6개소가 수도권에, 국립예술단은 9개 모두가 서울에 있다. 특히 ‘국립’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 1개뿐이며, 그 전시관 3개는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또 서울을 선택했다. 문체부는 “후보지 두 곳은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기반 시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 있어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 상승효과를 기대할 만한 충분한 입지여건을 갖췄기 때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논리라면 향후 어떠한 중요 시설도 무조건 서울이어야 한다. 새로운 시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미래는 없고 과거에 쌓아 놓은 현재 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래서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인 양극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절대 풀어낼 수 없다. 이번 정부의 결정에 각 지역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것보다 더 나은 길을 찾아가자는 얘기에 귀를 닫아버린 정부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지역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더 나은 미래가치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기회를 공유하고자 했어야 한다.
한편 필자는 이번 상황을 지켜보면서 부러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든다. 연구개발(R&D)의 지방분권을 주장해 왔던 입장에서는 이번 문화분권에 대한 관심과 지역의 의지 표현이 부럽다.
지난 6월 24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에서 확정한 2022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따르면 내년도 주요 R&D의 예산 규모는 올해보다 4.6%, 1조405억 원 증가한 23조5082억 원이 편성되었다.
그 중 지역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R&D에 대한 예산은 0.94조 원이며 이는 총 배분·조정(안)의 4.0% 수준이다. “지역 혁신성장을 통한 균형발전”을 외치는 정부의 정책기조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증가율이다. 이 예산은 2년 전인 2020년 0.80원에 비해 17.5% 증가되었는데 같은 기간 주요 R&D 전체 예산이 38.6% 증가된 것과 비교하면 50%도 되지 않는다. 국가와 지역의 혁신역량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R&D의 기회에 대한 중앙집중과 양극화는 더욱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지역의 문제제기가 없는 것은 안타깝고 문화분권에 대한 의지 표현이 부럽다.
이번 정부 초기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 국가 R&D 혁신방안 등에 담겼던 지역주도 R&D 실현에 대한 지역의 희망이 화답해 주지 않는 정부에 의해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이 R&D분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이번 문화 분권에 대한 논의가 지역R&D를 포함하여 균형발전과 분권에 대한 의식 전환의 계기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재)부산산업과학혁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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