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은 많은 것이 다르다. 타고난 성격에서부터 성향, 생김새와 취향도 다르고 어울리는 친구와 취미도 다르다. 가족이 모여 살면 식성이 닮는다고 하는데, 나와 딸아이는 단백질의 감칠맛에 환호하고, 아내와 아들 녀석은 당분이 주는 쾌감을 사랑한다. 같은 가족끼리도 이렇게 다른데, 세상의 다양한 ‘남’들은 말할 것도 없다. 여러 사람을 모두 만족시키는 식사 메뉴를 고르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10명이 모이면 10개의 다른 개성이 있다.
기호(Favor), 즐기고 좋아함. 어렸을 때부터 이 기호의 다름이 너무나 신기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은 종(species)인데 왜 다른 기호를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할까. 이 ‘다른’ 취향과 개성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참 궁금했다. 유전학자들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가 달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사회학자들은 사람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서양에는 태어난 날과 시, 그리고 별자리에 따라 성격이 결정지어진다는 점성술이 있고, 동양의 명리학에서는 음양오행의 기운에 따라 기질을 타고난다고 한다. 이목구비로 기세를 파악하려는 관상학도 있고, 두상의 모양으로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점치는 골상학(Phrenology)이 발전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신경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인간 개성의 근원을 찾겠다는 물음은 모든 것이 버거웠던 대학생에게 너무나 큰 철학적 난제였다. 시간이 흐르고 질병 치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신약의 후보가 되는 물질을 생체 내로 전달하는 약물 전달체(Drug delivery system)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나노 입자(nano-particles)를 배웠다. 나노란 10억분의 일 m의 아주 작은 알갱이를 뜻하는 말이다.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으로 나노 입자 형태의 약물 전달체를 만들고, 그 표면에 다양한 물질을 붙여 특성을 관찰하는 연구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알갱이의 모양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 일을 하시는 화학과 교수님이 ‘진짜 과학자’처럼 보였다.
만든 나노 입자에 빛을 쬐면, 특정 색깔을 흡수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노 알갱이의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서 입자가 흡수하는 색깔이 달라진다. 살아 있지도 않은 조그만 돌덩어리의 모양과 크기만 바뀌었을 뿐인데 좋아하는 색깔이 달라진 것이다. 돌덩어리조차도 기호가 다른 데 더욱 복잡한 생명체인 우리 인간의 서로 다른 개성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에 품었던 난제와 타협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왜 사람이 서로 다른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막상 내 연구실을 가지고 독립된 연구를 시작했지만, 이 정도의 공부로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나름의 성찰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나를 과학의 세계로 인도해 준 물음에 늘 감사한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다른 신기하고 재밌는 현상도 많이 알게 되었다.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 (The Island)’에서는 복제 인간이 보편화 된 2019년의 인류를 그리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워낙 빨라 곧 인류가 과학으로 세상을 통제할 날이 올 거라는 전제에서 나온 시나리오지만, 2021년이 된 현재의 우리는 복제 인간은커녕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매일 많은 사람이 슬프게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는다. 전에 없는 경제 위기를 맞이했고, 마음의 여유를 잃은 사람들 간의 비난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어렸을 때는 각각의 개성과 다름에 대해 신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두려워진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불화를 일으키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 나노 입자들처럼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꿈도, 혹시 내가 과학을 시작할 때 품었던 물음만큼이나 허황한 것일까.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