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 직전인 2002년 5월 개봉한 홍콩 영화 ‘소림축구’. 중국의 쿵푸 고수들이 축구팀을 만들어 강팀들을 물리친다는 기상천외한 스토리에 월드컵 열기까지 더해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20 도쿄올림픽 초반 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소림탁구’ 신드롬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25일 한국 여자탁구대표팀의 막내 에이스 신유빈(17)과 ‘일합’을 겨룬 중국 출신 룩셈부르크 대표 니시아리안(58·Ni Xialian, 倪夏蓮·세계랭킹 42위)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다. 팬들은 41살이나 어린 선수를 상대로 절묘한 코스 공략과 강약 조절로 경기를 7세트까지 몰고간 리시아리안의 노련한 경기력에 혀를 내둘렀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은둔 고수 등장” “이것이 진정한 소림탁구” 등의 익살 가득한 반응이 넘쳐났다.
알고보면 그녀는 그저 그런 무명 선수가 아니다. 1963년 7월생인 그녀는 15세 때 중국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천재 탁구소녀’였다. 20세 때인 1983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에서 혼합복식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1991년 룩셈부르크에 귀화한 후에도 각종 기록을 쏟아냈다. 1998년 중국 출신 귀화 선수 최초의 유럽탁구선수권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올랐고 2002년 대회까지 석권했다. 올림픽 출전도 2000년 시드니 이후 다섯 번 째인 니시아리안은 탁구 종목 사상 최고령 출전자로 기록됐다. 그녀는 또 탁구 사상 최장시간 경기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2017년 열린 오스트리아오픈 32강전에서 당시 세계랭킹 13위의 18세 일본 대표 하시모토 호노카와 1시간 32분 44초 동안의 대접전 끝에 4-3으로 승리했다. 그녀는 2000년 이후 20년 이상 세계랭킹 100위권을 유지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녀의 롱런 비결은 뭘까? 왼손잡이인 데다 양면 ‘핌플 러버’를 장착한 중국식 펜홀더 전형이어서 상대방이 까다로워 한다는 점도 이유로 꼽힐 수는 있다. 그러나 진짜 비결은 탁구와 인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태도에 있지 싶다. 니시아리안이 도쿄행 마지막 티켓을 획득한 후 남긴 소감에 잘 드러난다. 그녀는 “올림픽 메달을 딴다면 좋겠지만, 긍정 에너지와 도전 정신으로 탁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경기인지 세계에 보여줄 수만 있으면 그걸로 행복하다. 결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25일 신유빈에게 역전패한 뒤에도 명언을 남겼다.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어요. 계속 즐기면서 도전하세요.” 이쯤 되면 ‘소림탁구’의 ‘은둔 고수’를 넘어 인생의 ‘참된 고수’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