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선수 뒤에는 묵묵히 그들을 담금질해온 훌륭한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다. 2020 도쿄올림픽 펜싱 사브르 종목에서 단체전 금(남자)·동메달(여자)을 딴 선수들에게도 그런 ‘사부님’이 있었다.
이효근(54) 전 동의대 펜싱부 감독. 사브르 남녀대표팀 8명 중 남자팀의 구본길(33)과 김준호(27), 여자팀의 김지연(33), 윤지수(28), 최수연(31), 서지연(28) 등 6명이 이 감독의 가르침을 받아 초일류 선수로 성장했다. 구본길 김준호 최수연 윤지수는 동의대 출신이고, 김지연과 서지연은 부산디자인고 재학 시절 배웠다. 동의대와 부산디자인고는 자주 합동 훈련을 했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 사브르의 대약진은 ‘이효근’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독 이전에 빼어난 선수였다. 서울서 태어나 한국체대를 졸업했으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다. 특히 17세이던 1984년 한국 펜싱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돼 서울(1988), 애틀랜타(1996)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뛰어난 스피드와 기술에도 불구하고 메달 획득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세계 최강의 제자들을 키우겠다’는 제2의 꿈을 ‘펜싱 불모지’ 부산에서 찾는다. 그가 1999년 아무 연고도 없던 부산에 불쑥 등장,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그는 양운중, 신도고에 이어 2001년 동의대 펜싱팀 출범까지 이뤘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동의대 전성시대’가 열린다. 1기 제자 한주열은 도쿄올림픽 여자팀 코치를 맡고 있고, 2기 제자인 오은석은 8기 제자 구본길과 함께 런던올림픽 단체전 첫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꽃미남 검객’ 김준호는 그를 향해 “내 인생의 사부님”이라고 불렀다.
지장 용장 덕장의 면모를 모두 갖춘 그였지만, 떠날 때는 말이 없었다. 2017 독일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에 대표팀 코치로 참가해 남자단체 금·개인전(구본길) 은·여자단체 은메달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이끈 직후 훌쩍 태평양을 건너가 버렸다. ‘지천명’을 맞아 후진을 위해 자리를 비워준 셈이다. 그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글로버스(GLOBUS) 펜싱클럽’을 열고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현지 제자들이 전미펜싱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민 4년이 다 됐지만 마음은 항상 부산에 있는 것 같다”는 이효근 감독. 펜싱계 ‘어펜저스’들의 영원한 사부님인 그의 인생 3막 도전을 힘차게 응원한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