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의 껌 씹는 습관이 국내에 알려진 데는 메이저리그 124승에 빛나는 ‘한국인 최초 빅리거’ 박찬호(48) 해설위원의 공이 컸다. 1994년 LA 다저스 입단 당시에는 그가 출전하는 날이면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그런데 TV를 보는 국내 팬들 눈에는 껌 씹는 모습이 특이하게 비쳤다. 투수나, 타자나, 더그아웃의 감독과 코치, 대기선수에 이르기까지 씹고 또 씹어댔다. 이후 용병 선수가 늘면서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껌 씹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도쿄올림픽 막바지 야구선수 껌 씹는 장면이 때 아닌 ‘태도 논란’에 휩싸였다. 7일 도미니카와의 동메달 결정전 도중 한국팀 4번 타자 강백호(22)가 더그아웃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껌을 ‘질겅 질겅’ 씹는 모습이 화면에 비치면서다. 마침 한국팀이 8회 초 6-10으로 역전당한 순간이어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찬호 위원의 호통이 터졌다. 그는 “강백호의 모습이 잠깐 보였는데요. 이러면 안 됩니다. 더그아웃에서 계속 파이팅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질지언정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됩니다”고 말했다. 껌 씹는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박 위원의 질책은 ‘국가대표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선수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감과 간절함이 없어 보이는 후배에 대한 단호한 훈계였다.
이날 강백호의 태도는 경기 후 자책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한 주장 김현수(36)의 눈물과 대비돼 팬들로부터 더 큰 비판을 받았다. 이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건 최고참 김현수의 절박함과 올림픽 첫 출전인 ‘청년 거포’ 강백호가 보인 태연함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2006년 고교 졸업 때 오라는 팀이 없어 연습생부터 시작한 김현수와 2018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인 강백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태극마크의 무게감에 대한 인식 차이다. 강백호는 같은 날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고 눈물을 쏟은 여자배구대표팀 에이스 김연경(33) 같은 선수에게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국가대표의 의미’에 대해 김연경은 “의미에 관해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 영광스럽고 자부심이 있는 자리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강백호도 언젠가 후배들을 이끄는 선배의 자리에 서 있을 때가 온다. 그때 진정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현수, 김연경 같은 선수 말이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