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가 화제다. 지난달 28일 개봉 후 일주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1991년 1월 소말리아 내전 때 현지 남북한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한 내용이다. 고립된 도시(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의 처절한 생존기가 감동적이다. 그도 그렇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해 인상 깊은 게 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유엔(UN) 가입을 위해 펼친 외교전이다. 최대 ‘표밭’인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교섭에 공을 들인 것이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소말리아대학생 연수 프로그램 장면도 원조사업을 겸한 전략의 일환으로 읽힌다.

뜬금없이 ‘모가디슈’를 거론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보면서 2030 부산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전이 연상되었던 까닭이다. 알다시피 엑스포 개최지는 국제박람회기구(BIE) 169개 회원국의 총회 투표로 결정된다. 이들 중 3분의 2가 개발도상국이고, 3분의 1이 아프리카 국가다. 엑스포를 부산에 가져오려면 결국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게 관건이다.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 유치전의 핵심 과제로 부각된 이유다.

그 점에서 부산은 안성맞춤이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한데, 그 원조역사의 출발점이자 본고장이 바로 부산 아닌가. 1950년 6·25전쟁 후 폐허 속에 미국과 유엔의 원조물자가 부산항 1·2부두로 속속 들어왔고, 그 물자는 전국에 배급돼 경제 재건의 젖줄이 되었다. 그랬던 부산항은 이제 ODA물자의 해외 수송기지로 바뀌었다. 이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산만의 역사적 자산이다.

부산에도 각종 원조로 세워지거나 운영된 시설이 수두룩하다. 한국전쟁 후 부산의 미군 군수기지사령관이던 위트컴 장군이 부산대학교 장전캠퍼스 부지 마련과 메리놀병원 건립, 부산역전 대화재 이재민 이주단지 조성 등을 지원했던 것은 원조의 대표적 사례다.

게다가 부산은 2011년 세계개발원조총회(HLF-4) 개최지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아시아권 도시에서는 사상 최초로 열린 데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특히 국제원조정책의 패러다임을 ‘개발 효과성’으로 전환하고, 공여 주체들의 새로운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합의한 ‘부산선언’이 채택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 총회를 통해 부산은 개발원조의 상징적 도시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니 엑스포 유치전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맥락에서 월드엑스포 유치 추진장소인 부산항 북항 일원에 국내 최초의 원조역사전시관(가칭)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국제신문 지난달 28일자 1·8면 보도)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기에 산업통상자원부의 범정부 엑스포유치기획단도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에 이를 반영할 의사를 나타냈을 터다. 하기야 개도국의 관심과 마음을 사는 것으로 원조 분야보다 좋은 게 없을 듯하다. 부산 엑스포의 주제(세계의 대전환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와도 잘 들어맞는다. 지구촌 기후위기와 양극화 등을 극복해 나가려면 연대와 협력, 개도국과의 동행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니 말이다.

비단 엑스포 유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 교육과 문화, 관광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부산항은 일제 강점기 선조의 애환이 서린 곳이고, 한국전쟁 시기 ‘피란수도’와 전후 복구, 원양수산·해양 개척, 물류산업 등 근현대사의 숱한 이야기를 품은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2부두와 중앙부두, 3·4부두 등의 재래부두는 북항재개발 사업으로 이미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1부두(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항구)도 원형 보존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부산항 박사’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의 지적을 되새길 만하다. 그는 저서(2019년 ‘부산항 이야기’)에 1·2부두 등에 얽힌 사례를 소개하며 이렇게 적었다. “제1부두 어디에도 역사적 사실을 기억할 만한 유물이나 기념비 하나 없다. (부산이) 해양수도로서 최소한의 힘을 가지려면 부산항만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서 가꾸고 그 정신을 기려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에 오른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곳) 중에서도 핵심은 부산항 1부두이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1부두의 보존과 개발을 두고 아직도 내부 입장이 다른 모양새다. 이래서야 세계유산 등재가 제대로 성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형준 시장은 선거 전 후보 시절 1부두를 방문한 자리에서 “부산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 이곳을 역사적 장소, 기억의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아울러 원조역사관 조성에 부산시가 적극 나서고 뒷받침해야 마땅하다. 부산항의 1부두 원형 보존과 함께 원조역사관이 맞물려 돌아가면 금상첨화가 되지 싶다.

편집국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