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해지는 기후재난과 장기간 계속된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일상이 마비되는 재난적 상황은 사회, 경제적으로 쌓여온 모순들을 일시에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관계가 단절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불평등은 한층 심화된다.
중첩된 위기 속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경제적 충격과 사회적 공포로 짊어져야 할 고통의 무게가 늘어난다.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는 이들에 대한 돌봄 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과중한 재정부담은 우리 시대가 안고 가야 할 피할 수 없는 현안이다.
1940년대 영국과 미국 등에서 시작된 현대 복지제도는 무상의료와 완전고용, 가족수당과 사회보험을 이상으로 큰 발전을 이뤄왔다. 인류의 건강 증진, 평균수명의 연장, 교육의 양적 확대와 질적 향상 등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국가 중심의 돌봄체계와 재정부담을 문제시했고, 공적 영역인 돌봄을 시장의 틀로 편입시켰다.
돌봄에 영리적 잣대가 작용하면서 질보다는 양적 목표에 치중하는 성과주의에 빠졌다. 물량 위주의 돌봄은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 만성질환의 만연, 불평등의 심화, 복합적 위기 등 새로운 환경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질 낮은 대중적 삶이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방적인 돌봄체계는 현상을 관리하기조차 벅차게 됐다. 우리나라도 이번 세기 들어서 본격적 국가 돌봄체계가 도입됐다. 20년의 짧은 기간 동안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보편적 공적 돌봄이 실현되고 있다. 벽촌까지 노인 요양의 손길이 펼쳐지고, 출산과 육아와 관련한 지원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하지만 광범위한 민간 위탁, 일방적 시혜의 한계를 보이며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돌봄 영역에서의 학대 사건이나 부정과 비리 등은 물량 위주의 돌봄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돌봄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홀대나 편견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돌봄 노동은 과중한 업무나 심리적 부담 등에 비해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영세한 위탁시설도 종사자들의 전문적 역량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돌봄 종사자들의 자존감은 떨어지고, 잦은 이직 등으로 인적자원을 축적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재정적 투입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성과는 미흡하다. 물량 위주의 돌봄이 안고 있는 한계다.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돌봄, 양적 목표에 급급한 돌봄으로는 개인들의 삶을 개선하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위기의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한 돌봄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개선돼야 할 것이 많다. 먼저 돌봄에 대한 관점이 관리에서 관계로 바뀔 필요가 있다. 수혜자들을 관리하는 데 급급한 공적 돌봄은 이제 사람과 사람의 연결, 관계 맺기를 대전제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관리 차원에서 일방적 베풂은 상업적 서비스와 다를 바 하나 없고, 대상자들을 통계 숫자로 받아들이기가 십상이다. 돌봄 공급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속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돌봄 수혜자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돌봄이 돼야 한다. 수혜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하고 존중할 때 자립의 동기와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진료와 약을 제공하고, 수업료를 지원하고, 문화바우처를 공급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수혜자가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바라보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끌어내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고, 능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돌봄 종사자들 또한 돌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겠다. 돌봄 노동은 공동체에서 매우 소중한 역할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돌봄 종사자가 사회적 편견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우울증을 겪는 경우도 상당하다. 직업적 인정과 경제적 보상만큼이나 돌봄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대해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돌봄 종사자의 의욕도와 만족도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일의 고충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상담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에 보람을 느끼고 몸과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지원도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나눔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이웃과 돌봄 없이는 영위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혼자서 잘 사는 것보다 서로 배려하고 협업하는 가운데 좋은 삶이 이뤄진다는 점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돌봄은 끊어진 관계를 잇고 막힌 소통의 통로를 여는, 위기와 갈등의 시대에 무엇보다 값진 행위다. 무한경쟁 속에서 파편화돼 각자도생하며 삶의 위기로 내몰린 현대인 모두가 돌봄을 주고받으면서 온전한 삶을 도모할 수 있었으면 한다. 돌봄은 상처 난 개인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허물어진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는 길이다.
한살림 부산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