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필자는 의미 있는 연주회에 다녀왔다. 사흘간에 걸친 ‘소리광대’라는 판소리 완창무대가 그것인데 국립부산국악원의 판소리단원 전원이 하루씩 릴레이로 완창발표회를 한다는 것은 전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 완창은 이야기 전편을 소리꾼 혼자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고수가 치는 장단에 맞춰 몇 시간을 불러야 하는 대장정의 무대로, 오랜 소리공력이 없으면 무대에 설 수 없어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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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꾼 김미진 씨가 강정용 고수의 장단에 맞춰 유관순열사가를 부르는 모습.
국립부산국악원제공 |
필자는 3일 동안의 공연 중 첫째 날 소리꾼 김미진이 부르는 해방이후 근대창작판소리의 시초라 할 ‘유관순열사가’를 감상했다. 댕기머리를 땋은 소녀 유관순을 노래하는 소리꾼과 콧수염에 중절모를 쓴 고수의 모습은 흡사 구한말 극장식 공연장인 원각사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분위기를 잘 연출한 무대였다.
소리꾼은 이야기의 대목이 시작될 때 먼저 소리를 내어주면 북을 치는 고수는 곧 그 대목에 맞는 장단을 받아 음악을 주고받으며 중심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소리꾼의 다양한 상대역 역할도 능숙하게 해낸다. 또한 고수는 관객의 호응도 유도하는 그야말로 판소리의 팔방미인인데 이러한 고수의 중요함을 일컫는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 공연에서 극의 완성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관객이 아닐까 한다. 야외에서 불리며 관객을 웃고 울리던 전통사회의 판소리 전통이 지금의 공연장에도 남아 있는데, 이날 공연 전 나눠 준 작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있던 관객들은 소리꾼이 만세삼창을 외칠 때마다 함께 만세를 외치며 카타르시스를 만끽했다.
또한 소리꾼도 사람인 지라 소리를 하는 중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이어 가겠습니다’ 할 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고음을 지르는 순간 고수와 함께 ‘얼씨구’ 하는 추임새를 기막히게 넣어주며, 도쿄올림픽에서 김제덕 선수의 파이팅이 큰 울림이 되었듯 소리꾼은 그새 힘을 얻어 극을 이어감을 반복하며 완창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이러한 즉흥성과 현장감은 판소리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한다.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 중에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중국에 곤곡, 몽골에 흐미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판소리가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판소리 다섯 바탕 제목을 외며 책으로 배운 판소리가 아닌 우리 민족의 삶에서 빚어진 결정체가 사람의 목소리로 발현되는 무대를 직접 감상해본다면, 그 많은 사설 가사를 어떻게 외워서 하는지에 놀라고, 이야기 대목에 맞게 풀어내는 무궁무진한 소리 표현력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사람 목소리 하나로 좌중을 압도하는, 고도로 단련된 수준 높은 구전심수의 극치인 판소리 완창무대를 꼭 한 번은 관람해보시길 권해드린다.
소리연구회 소리숲대표·음악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