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사거리 신호가 막 바뀌려는 찰나, 급한 마음에 속력을 올리려 했다가 내비게이션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멘트에 이내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도로로 나오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아 가까스로 사고를 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귀찮게만 여겨졌던 그 과속방지턱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은 있을 것이다.
육상에 도로가 있다면 바다에는 뱃길, 즉 항로가 있다. 이 항로에도 사고 위험이 높은 구역에는 제한속력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바다에는 과속방지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사이, 올해로 두 번째 추석을 맞이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바닷길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비단 사회적 거리두기 뿐만이 아니다. 연휴 분위기 속에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안전의식도 다시 한번 다잡아야 할 시기다.
예년만큼은 아니지만, 귀경객들로 붐비는 고속도로처럼 바다도 섬 지방 귀성객들을 나르는 여객선의 운항횟수가 늘어나 여느 때보다 혼잡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객선의 과속은 자칫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여객선은 승선 인원이 많은 데다 대피하기가 어려운 바다의 특수성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선박 과속으로 인한 충돌과 좌초 등으로 발생한 사고는 559건이나 된다. 지난해 4월에는 부산항에서 과속으로 출항하던 대형 국제여객선이 소형작업선과 충돌하는 아찔한 사고도 발생했다.
망망대해처럼 보이지만, 바다에는 화물선 어선 공사작업선 등 수많은 선박들이 각자 정해진 항로를 따라 항해 중이다. 이러한 선박들이 항·포구 입구에 한꺼번에 몰리다 보면 충돌하거나 좌초되는 선박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해양경찰은 이러한 선박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매년 추석 연휴 기간 전국 해상교통관제센터와 경비함정을 통해 안전 속력 준수, 운항자의 졸음 항해 방지, 음주운항 단속 등을 벌여 여객선 안전관리를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안전관리와 더불어 해양경찰은 빅데이터 등 4차 산업기술을 활용해 과속 등 사고위험 요소를 조기에 발견하고, 선박에 제공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과속·항로이탈 선박을 자동탐지하는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올해 8월까지 22건의 해양사고를 예방했다.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음주운항을 자동으로 탐지하는 시스템 역시 올해 연말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또한, 전국 선박교통관제 정보를 통합, 이용자에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도 2023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연구 중에 있다.
이러한 해양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항자의 협력이 없다면 여객선 항해 안전은 공염불일 뿐이다. 해양경찰의 역할은 과속방지 등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정보를 선박에 제공하는 것이며, 선박안전을 책임지고 결정짓는 것은 결국 운항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년 추석에는 묵묵히 안전항해에 전념해주신 운항자 여러분들 덕분에 여객선에서 단 한 건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힘든 목표처럼 보이지만 협력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국민과 정부기관의 협력 속에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말이다. 바다라는 공간적 제약 속에 해양경찰과 여객선 운항자가 힘을 합친다면 바다 위의 보이지 않는 과속방지턱도 비로소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올해 추석에도 지난해처럼 무사고를 기원한다.
해양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