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는다’는 뜻의 한자성어가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 불가(佛家)에서 천년 넘게 전해온 가르침이다. 유래는 중국 당나라 시대 한 고승의 법어에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의 제6조인 혜능(慧能·638~713) 선사. 개창조인 보리달마로부터 여섯번 째 종조인 혜능은 글을 모르는 스님이었다. 까막눈임에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측면에서 구한말 경허 대선사의 3대 수법제자 중 한 명으로 부산 백양산 선암사에서 입적한 ‘천진불’ 혜월(慧月·1862~1937) 스님과 비견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혜능은 어느 날 한 비구니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글을 모르면서 어떻게 진리를 안다는 말씀인지요?” 그러자 혜능은 “진리는 저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답했다. 즉,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 보다가 어느새 달은 잊어버리고 손가락만 기억하게 됨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렇듯 뜻 깊은 말씀이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서 자주 변용되고 있으니 유감이다. 특정 정치세력이 곤경에 처했을 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고 쓰는 수법이다. 이른바 ‘프레임 전환’ 기법.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부산에서 일어난 ‘초원복집 사건’이다. 대선을 1주일 앞두고 정부 여당 관계자와 지역 기관장들이 초원복집에 모여 당시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등의 모의를 했다가 발각됐다. 불법 관권선거 음모가 드러나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공권력은 폭로자의 ‘불법도청’을 문제 삼았다. ‘메신저 공격’을 통한 프레임 전환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본질은 관권선거인데, 대중의 기억에는 불법도청만 남았다.
30년이 지났지만 정치판은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인다. ‘고발사주’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후보 측이 사건 제보자와 박지원 국정원장의 8월 초 만남을 두고 ‘정치공작’이라며 13일 이들을 고발했다. 여당은 “본질을 가리기 위해 메신저를 공격해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이 더는 속지않을 것”이라고 맞선다. 어느 쪽이 웃을지, 결과는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제보자의 석연찮은 발언이 빌미를 준 측면도 없지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본질이 망각돼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고발장의 생산과 전달 과정에 대한 명명백백한 규명, 그리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의 관련성 여부다. ‘견지망월’의 의미를 되새겨 볼 때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