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문화 가정의 주부들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베트남 출신의 한 여성이 고충을 토로했다. 베트남에서 평생을 매일같이 먹던 ‘느억맘’을 먹지 못해 괴롭다는 게 요지였다. 생선과 소금을 섞어서 발효시킨 느억맘은 베트남인에게 가장 중요한 조미료다. 나는 국과 찌개를 끓일 때, 간장이나 액젓 대신 느억맘을 사용하라고 권했다. 대신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다. 감쪽같이 속을 것이니 절대 안심하라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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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미료인 느억맘. |
인간의 혀가 느끼는 맛은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네 가지였다. 이는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론’에서 정의했다. 매운맛은 혀가 느끼는 통증, 즉 통각이기 때문에 미각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네 가지 맛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00년이 훌쩍 지난 20세기가 되어서였다. 1908년 다시마에서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을 발견한다. 그리고 1985년 짠맛 신맛 단맛 쓴맛에 이어 감칠맛을 제5의 맛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 정체가 규명된 것이 최근 일뿐 감칠맛은 인간이 단맛과 더불어 태초부터 좋아했던 맛이다. 단백질을 분해하면 여러 가지 아미노산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아미노산의 일부가 감칠맛을 낸다. 대표적으로 글루탐산 이노신산 구아닐산 등이 있다. 글루탐산은 토마토나 콩 그리고 다시마 등에, 이노신산은 생선과 육류에, 구아닐산은 각종 버섯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문제는 단백질을 분해해야 감칠맛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류가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얻는 방법 중의 하나로 발견한 것이 발효다. 한국인에게는 콩을 발효시켜 얻는 간장, 된장 등 두장(豆醬)이 익숙하다. 하지만 두장 못지않게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발효 조미료가 어장(魚醬, Fish sauce)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서 만든 가룸(Garum)이다. 다양한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위에는 맑은 국물이 뜨고 아래에는 침전물이 생긴다. 이때 위에 뜬 맑은 국물을 가룸이라하고 아래에 가라앉은 침전물을 알레크(allec)라고 했다. 가룸은 귀족의 조미료였고 알레크는 서민의 조미료였다. 우리나라 생선 액젓 만드는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비단 가룸뿐만 아니다.
베트남의 느억맘, 태국의 남프라, 필리핀의 파티스, 인도네시아의 케깝이칸 등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생선과 소금을 발효시켜서 얻은 액젓이다. 심지어 멸치 샛줄멸 밴댕이 청어 등 청어목 청어과의 작은 생선을 사용하는 것까지 동일하다.
감칠맛은 서로 다른 성분이 결합할 때 증폭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소의 양지나 닭 혹은 마른 멸치를 넣어 미리 국물(이노신산)을 내고, 여기에 다시마(글루탐산)나 버섯(구아닐산)을 곁들이고, 마지막으로 국간장이나 액젓으로 간(글루탐산)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조리법은 결국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니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국간장 대신 느억맘으로 간을 한들 아무 상관없다. 인류가 먹는 음식은 어차피 감칠맛이라는 배후세력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감칠맛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어차피 하나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