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눈 앞이다. 며칠만이라도 무거운 마음의 짐들 내려 놓고, 소외된 이웃이나 친지가 없는지 살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통령선거 관련 ‘추석 밥상 민심’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선 이슈들이 ‘안주거리’가 되면 좋든 싫든 한 두 마디씩 거들기 마련이고, 자칫 부모 형제와의 감정 싸움으로 비화될 우려도 있다. 이런 불화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되도록 정치와 관련한 말을 삼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처럼 만난 가족끼리 입을 닫아버리면 서로가 난처해진다. 이럴 때 상처를 남기지 않고 대화를 하려면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지만, 정치 논쟁에서 ‘배려의 언어’만 골라 쓰기란 말처럼 쉽지 않음을 경험으로 안다.
따라서 약간의 명절 준비물이 필요하다. 챙겨야 할 ‘3대 준비물’은 ▷차분히 생각하기 ▷합리적 판단하기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기다. 도움이 될 만한 동·서양의 경구들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선, 차분히 생각하기다. 판단에 앞서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허나 ‘정치의 계절’이랍시고 흥분하고 들뜬 상태로는 힘들다. 멈추고 안정을 취한 후 깊이 생각해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을 보자.
‘지지이후유정(知止而後有定), 정이후능정(定而後能靜), 정이후능안(靜而後能安), 안이후능려(安而後能慮), 려이후능득(慮而後能得).’
즉 ‘그칠 줄 알아야 안정이 되고, 안정된 후에 정신이 고요해지며, 고요하면 편안하고, 그러면 깊이 생각할 수 있고, 깊이 생각한 후에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추석 연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멈춘 채로 고요함 속에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준비물인 ‘합리적으로 판단하기’와 이어진다. 도움이 될 글을 신약성서 중 마태복음 7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마태복음 7장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필자 같은 사람에게도 친숙한 경구들이 가득하다.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3절)”라든가,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6절)”와 같은 말들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는 글이 많다. 1절에서부터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고 경고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대통령감’을 판단해야 하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글귀도 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을 보고 진짜 예언자인지 가짜 예언자인지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송이를 따거나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리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16~20절)
이 말처럼, 그 사람이 지금 보이는 행동과 말 태도를 잘 살펴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대통령감’인지 아닌지 능히 알 수 있게 된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 문화 예술 노동 인권 환경 통일 평화 등 인간에게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인식과 인간적 따뜻함, 진실성 등이 모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 및 세계관과 부합한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그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기’다. 어쩌면 가정 평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의 준비물이다. 아무리 깊이 생각한 후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해도 상대방까지 동의하리란 법은 없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가 억지 가르침과 강요다. 하지만 이는 절대적 금기다. 아무도 정치적 견해에 대해 강요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논어(論語)’ 위령공편에 나오는 저 유명한 문장을 떠올려 보자.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역지사지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대선 후보 경선전이 한창이다.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듯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나선 후보가 다수이고, 그 와중에 어리석은 말과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른 후보도 있다. 이처럼 치열한 전쟁터에 시민까지 뛰어들 필요는 없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따지며 편가르기를 하는 순간 가정의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이번 추석 연휴, 식구들만이라도 서로에게 공감과 이해, 위로의 상대가 되어 주면 좋겠다. 아직 본선은 반년이나 남았고, 그 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