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는 고대·중세·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국가 모델 혹은 정치 체제를 경험했다. 그 가운데 이론·경험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은 북유럽 국가들이 발전시킨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이다.
이들 나라는 국민행복 수준이 매년 최고를 기록하고 경제와 복지의 조화로운 발전을 지속한다. 이는 미국 등 어느 나라보다 북유럽 모델에서 ‘정의의 원칙’이 민주 헌정 체제라는 정치공동체의 기본구조에 잘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는 경제·복지 체제가 민주 헌정 체제의 정의로운 헌법에 조응하면서 여러 법률과 정책들을 통해 정치·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서 ‘정의의 원칙’이 제대로 관철되는 국가 모델, 즉 정의로운 민주 헌정 체제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다. 정의로운 민주 헌정 체제인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정치가 “꽃보다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국가 모델에서는 누구라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협력적 노력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는 정의의 원칙에서 벗어난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제로 북유럽 복지국가의 주류 정당에서는 포퓰리즘 정치가 발을 붙이지 못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경제·복지 체제의 개별 제도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정치적 지지가 높다. 각 제도의 구성과 내용 자체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조화롭게 담아냄으로써 ‘정의의 원칙’이 잘 구현된 것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즉, 개별 제도의 정치·사회적 정당성이 높다. 더불어, 이런 정의로운 민주 헌정 체제의 더욱 중요한 이점은 개별 제도의 경제·사회·재정적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령, 고령화로 인해 기존 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면 정치 주체들은 정치·제도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연금 개혁을 적절한 시기에 수행하고 출생률 제고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민주 헌정 체제와 해당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결국,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은 ‘정의의 원칙’이 관철된 정의로운 민주 헌정 체제일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정의로운 보편적 복지국가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것의 초입에 서 있다. 여러 지표와 국민행복 수준 등을 고려해 인생에 비유하자면,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장년기 수준이고 우리나라는 아동기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의의 원칙’이 헌정 체제의 기본구조인 헌법과 법률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경제·복지 체제를 이루는 개별 제도에 대한 정치·사회적 정당성의 수준이 높지 못하고, 정치적 지지가 약한 편이다. 그러므로 변화된 상황에 따라 제도 개혁을 단행하려고 해도 이해관계에 쉽게 흔들린다. 가령, 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롭다는 진단이 나와 있음에도 현실의 정치 체제는 제도 개혁에서 무기력하고 무능하다.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 ‘정의로운 민주 헌정 체제’를 조속하게 구축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성공시킨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서둘러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 일을 10년 내에 완료해야 한다. 인구학적 조건이 최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20명의 노인을 부양하지만 10년 후엔 40명을 부양해야 한다. 생산연령인구가 연평균 34만 명씩 줄고 노인인구의 비중이 급속하게 늘어나므로 잠재성장률은 낮아지고, 폭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할 정부의 재정 능력도 취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양극화·불평등과 경제·사회적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다. 조속하게 정의로운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를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지속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2019년 국세 수입은 300조 원에 불과했다. 지방세 100조 원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20%다. OECD 37개 회원국 평균이 24.9%이므로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로 가려면 GDP의 4.9%포인트만큼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지난 수년간의 조세부담률 증가 추세로 볼 때 제대로 노력한다면, 향후 5년 이내에 우리나라는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은 조세부담을 더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2030년까지 OECD 평균을 넘어 ‘더 정의로운’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의 건설을 향해 매진해야 할 것인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다. 바로 ‘복지국가 증세’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는 ‘기본소득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적 복병을 만났다. 문제는 이것이 정의로운 민주 헌정 체제를 의미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가로막는다는 데 있다. 헌정 체제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임으로써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도입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더욱 재촉하는 게 옳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장·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