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지난 27일 게재된 영국 배우 사이먼 페그의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꾸뻬 씨의 행복여행’ 등으로 잘 알려진 페그는 세계 1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유니폼인 초록색 ‘츄리닝’을 입었다. 또 극 중 도구인 인형과 구슬, 전자오락기, BTS 멤버 ‘진’의 대형 입간판 등을 배경으로 웃었다.
지구촌을 휩쓴 ‘한국 문화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 한 컷’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이 사진을 봤다면 저승에서라도 함박웃음을 터뜨릴 만하다. 선생은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 편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70여 년 전 울려 퍼진 선지자의 ‘문화 강국론’이 오늘날 실현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발한 풍자와 탁월한 패러디 능력에 다시 한번 무릎을 친다. 바로 ‘오십억 게임’ 패러디 열풍이다. ‘대선 판’을 달구는 이른바 ‘화천대유’ 논란에서 불거진 전 국민의힘 소속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 사태를 ‘오징어 게임’에 빗댄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가 강조된 원본 포스터를 변형한 ‘오십억 게임’ 포스터가 급속히 퍼져나간다. 원본 포스터의 배우들 얼굴은 곽 의원 부자, 박영수, 원유철 등의 인물 사진으로 대체됐다. 패러디 포스터의 종류도 수십 가지다.
‘오십억 게임’ 패러디가 봇물을 이룬 배경에는 곽 의원 아들의 해명성 글도 한 몫 했다. 그가 “나는 ‘오징어 게임’ 속 말일 뿐”이라며 피해자인 듯한 태도를 취하자 누리꾼들이 즉각 반발했다. 누리꾼들은 “456명이 참가한 오징어 게임은 1등 못하면 죽는데 오십억 게임은 6년만 일하면 50억”, “아빠가 곽상도가 아니라 미안해” 등 비판이 난무한다. 곽 의원 아들이 해명 글에서 “아버지 지인 회사였다”고 밝힌 부분도 ‘기름’을 끼얹었다. 누리꾼들은 “결국 ‘국민의힘’은 ‘아빠의힘’”이라고 일갈한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허탈함과 분노의 표출이다. 좁은 취업문 앞에서 고개 숙인 20·30대,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노후를 걱정하는 40·50대, 30년 넘게 일하고도 덧없이 밀려난 60·70대까지. 세대 별 차이도 크지 않다. 때때로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처절하다. 그래서 현실 속 ‘오십억 게임’은 상상 속 ‘오징어 게임’보다 더 슬프다. 백범이 ‘오십억 게임’ 포스터를 본다면 웃을까? 울까?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