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행이 지금처럼 한국 대표 지방은행이 되는데 심훈 전 행장의 역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IMF 사태 직후 금융권 2차 구조조정 바람이 불던 그때 삼고초려로 영입한 심 전 행장의 6년 체제 덕분에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지역 상공인들과 골프 회동이 있었는데 심 행장의 옷차림이 화제에 올랐다. 명품은커녕 모자부터 신발까지 중저가 지역 브랜드 일색이어서다. 심 행장은 오히려 “우리 고객의 상품을 쓰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전직 한국은행 부총재라는 권위를 내려놓은 그의 행보가 부산은행 위상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됐던지 ‘심훈 주가’라는 말도 나왔다.
대기업 오너나 CEO들이 요즘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대중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경쟁사 호텔 방문 인증사진을 찍는가 하면, 최근 인수한 야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맵시를 뽐낸다. 자녀와의 일상 공개에도 거침이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센스 역시 뒤지지 않는다. 익살스러운 사진이나 “나도 요플레 뚜껑 핥아먹는다”는 글을 올리면 팔로어들이 배꼽을 잡는다.
최근엔 비공식 석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서울 명품 매장에서 찍힌 사진 속 신 회장은 캐주얼한 운동화에 화려한 모피 코트를 걸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 패션은 단번에 온라인을 달궜다. 모피는 고가이긴 해도 인조이고, 운동화는 국내 스타트업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9만7000원짜리 제품이다. 사생활도 ‘환경·사회·투명경영(ESG)’ 기조에 맞춘 셈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한일 외교분쟁 등의 여파로 다소 침체에 빠진 그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약간은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다.
부산대 개교 이래 최고액을 기부해 화제가 됐던 고 송금조 ㈜태양사 회장은 한때 전국 최고액 개인 납세자였을 정도로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기금 출연식에 신고 나온 건 낡디 낡은 운동화였다. 차세대 오너들의 파격이 대중을 의식한 계산의 결과물이든 아니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수만명 직원의 생계가 걸린 회사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총수의 직접 소통 트렌드가 신생 IT가 아니라 전통 대기업에서 활발하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회장이나 CEO는 그 자신이 브랜드다. 사생활이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오너 리스크’가 아니라 ‘오너 프리미엄(회장님 효과)’을 기대하는 건 주주나 국민이나 같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