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의 전통 부촌은 서구 대신동이었다. 법원 시청 등 주요 관공서가 주변에 밀집해있고 특히 명문 중고등학교가 즐비해 부산에서 힘 좀 있다는 사람은 서대신동 동대신동 일대에 주로 살았다. 부잣집 아들 딸들이 많았던 이곳 한 초등학교의 교훈은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이 되자’였다. 지금 시각에선 생뚱맞지만 부촌이든 빈촌이든 가난이 일상이던 시절이라 지극히 ‘명심해야 할’ 슬로건이었다.
일선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온갖 간난신고를 뚫은 인생의 승리자를 많이 만난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과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질구질했던 모습을 굳이 들출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입장이 변하는 걸 종종 목격한다. 어둠을 강조해야 지금이 더 빛난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얻고 선택까지 받아야 하는 정치인일수록 특히 그렇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10대부터 공장을 전전하며 소년공으로 사느라 장애까지 입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어린 시절 흑백 사진은 귀티 나는 빨간 나비넥타이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과 대비를 이룬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 지사에 밀린 이낙연 전 대표도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잘 먹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여당 뿐 아니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해 대학 때 몸무게가 48kg이었다”(홍준표 의원), “쌀밥이나 고기는 구경도 못하고 찢어진 고무신 신고 다녔다”(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의 회고가 빽빽하다. 자신의 체험을 더 강렬하게 반추하는 게 보통 사람의 심리이지만 동시대 대다수가 공유하는 경험을 자꾸 강조하는 건 어딘가 불편하다.
지금의 60, 70대는 재래식 화장실의 지푸라기부터 수세식 화장실의 비데까지 모두 겪은 세대라고들 한다. 출생은 가난과 함께였지만 나라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초고도 성장을 거듭하던 시기에 청장년기를 보냄으로써 그 수혜를 톡톡히 입은 세대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로 나선 이들은 대학진학률이 20%이던 때 등록금 비싼 사립대나 일류 국립대에 들어가 사회적 성취를 쌓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왕년의 가난’이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한 삶을 살 지경에 처한 20, 30대에게 원래 의도대로 비칠지는 의문이다. 자식세대의 고통에는 둔감한 채 한때의 궁핍만 내세우는 어른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가난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지만 자랑할 일도 아니라는 옛말이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