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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생각] 지금 한국인은 어리둥절하다

  •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  |   입력 : 2021-10-14 19:09:5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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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사장님, 사장님, 고개 조아리던 알리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그 사장에게 ‘형’이라고 외친다. 영어 자막을 보니 각각 써(sir)와 이름 ‘상우’로 구분해 표현했다. 외국인들이 ‘형’이라 부를 때의 애틋한 뉘앙스를 어떻게 알겠는가. 이름부터 웃긴 한미녀가 갑자기 악당 장덕수를 ‘오빠, 오빠’라고 부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번역에서 오빠는 생뚱맞게 올드맨(old man)이 됐다. 다들 아시겠지만 초초초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오징어게임’ 얘기다. 이제 한국스러운 것들을 외국인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시절이 도래했노라 낄낄대며 우리는 이 상황을 즐긴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못 타는 이유도 이제는 명확히 알 것 같다. 노란색 하나만도 한 스무 가지 구별되는 표현을 쓰며 각각 적용되는 감성이 다른 게 한국어인데 어찌 번역으로 그 섬세한 감정 표현을 전달하겠는가. 몇 십 년 전, 국비 지원으로 노벨상을 겨냥한 위원회가 출범해 최상의 영어 번역물을 내기로 했는데, 대상이 된 작품이 하필 서정주의 시였다.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이 첫줄에서 탁 막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전설처럼 떠도는 일화가 있다.

이제 상황은 확연히 바뀌고 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정통하거나 최소한 친숙감을 느끼는 외국인이 폭증하고 있다. 당장 유튜브에 오징어게임 리액션 영상이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댓글을 읽다보면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드라마 속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표현과 설정에 대해 외국인들이 열심히 설명을 달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한류 팬의 수가 줄잡아 1억 명이다. 이 수치는 케이팝 유관 동호회 회원 수를 합산한 것인데, 이들은 거리에서 커버 댄스를 추고, 여럿이 모여 30초씩 포인트 안무를 이어가는 랜덤 플레이 댄스를 즐긴다. 주로 일본 문화행사 한 귀퉁이 부스를 얻어하던 문화축제도 이제는 K만으로 독자 행사를 벌이는 추세다. 한국의 추석날 자기 나라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송편을 먹으며 하하호호 하는 러시아 소녀들, 브라질 아줌마들의 영상이 흔히 목격된다. 그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한류의 첨병이다.

언젠가 꼭 한 번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 또한 보편적 현상이 된 것 같다. 한류의 류가 물결(wave)인데, 과장 없이 말하건대 이 물결이 지금 노도와 같은 파도를 이루는 형세다. 최전성기 시절의 일본도 감히 이런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전에도 꽤 많았지만 특히 오징어게임 등장 이후로 전세계 모든 나라 언론에서 한류열풍을 다루고 있다. 거의 공식처럼 오징어게임 실적으로 출발해 봉준호, BTS, 블랙핑크 그리고 한국음식, 한국식 화장의 각광을 나열하다가 도달하는 지점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과 분석이다. 일종의 비칭으로 코리아부라 불렀던 오타쿠 문화가 어떻게 주류가 될 수 있었는지 놀랍고 신기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한국인이 몹시 궁금한 모양인데 정작 우리 자신은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낄 따름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해외에서의 한류 붐은 거꾸로 한국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의 긍정적 측면을 다루는 이른바 국뽕식 유튜브 영상을 접하면 겁부터 났었다. 영상 제작자들이 우리의 좋은 점을 말하기만 하면 댓글창에 온통 욕설과 조롱이 난무했었다. 주로 극우 사이트 회원이거나 그 영향을 받은 이들로 추정되는 숱한 악플러들이 어딜 가나 출몰한다. 문장으로 보아 한국인이 틀림없는 그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온갖 극단적인 말로 싸움을 걸고는 했다. 특이하게 한국의 극우는 조국을 저주하는 편향성을 갖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악플러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여전히 악플은 달리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반박의 대댓글로 설 자리를 잃어 간다. 자부심과 긍정 마인드가 커진 결과물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한다는 명제가 있다. 지금 막 한국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보여지는 와중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트렌드 세터라 해도 과장이 아니게 됐다. 이런 추세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 큰 변화를 이끌 것이다.

일단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태생적 열등감이 없는 최초의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든 그 시야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당당할 것이다. 반면에 뭘해도 비판적 시각을 펼치는 관성도 계속될 것이다. 당장 오징어게임만 해도 발표 초기 국내에서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뻔한 신파의 반복이라는 것, 소재에 모방적 요소가 많다는 것. 그런 전투적 풍토에서 한류는 내용의 깊이를 더해 간다. 장담컨대 본격 개화기를 맞이한 한류가 단발적 인기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근거를 말하라고? 그냥 기분이고 기세다.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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