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휩쓸고 있는 K-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유난히 마음에 남는 말들이 있다. ‘깐부’와 깍두기. 1970년대 이전 태생자라면 낯설지 않을 이 말들이 어째서 사무치도록 아련한 것일까. 어떤 그리움 때문이지 싶다.
깐부와 깍두기는 유년시절 우리의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빛낸 ‘의미’들이다. ‘깐부’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같은 놀이를 할 때 한 편이 되거나 단짝이 된 사람을 일컫는 속어다. 깐부가 되면 설사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상대 깐부를 배신하지 않는다. 무한 신뢰를 지닌 ‘나의 편’이자 친구인 셈이다. 극 중에서 오일남 영감이 성기훈에게 “우리는 깐부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에 그 의미가 짙게 묻어난다.
깍두기 역시 마찬가지다. 놀이마다 편을 나눠 경쟁을 해야 더 재미가 있던 시절, 무리 중에 유독 지능이나 힘이 떨어지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어느 편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못난이’라고 소외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깍두기’라고 부르며 좀 더 약해보이는 팀에 추가해 들도록 배려했고, 때때로 이 깍두기로 인해 승부가 뒤집히는 짜릿한 경험도 맛보곤 했다. ‘깍두기 문화’가 건재하던 1980년대 후반까지 우리 사회에는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왕따 문화’가 없었다. 그래서 그리움이란, 이런 무한신뢰와 배려, 공생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살벌한 삶의 무한 경쟁 속에서 문득 떠올린 그 시절 벗들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이처럼 깐부와 깍두기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와 전통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현대적 개념이 바로 범국가적 신개념 복지정책인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다. 이 정책은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라는 슬로건에서 그 개념이 잘 드러난다.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 즉 자기 집이나 그룹 홈에서 각자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이다.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독립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다룬다. 보건복지부등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가 유기적 연계 체계를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2018년 11월 정부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내놓게 된 배경은 급격한 고령화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를 넘어 고령화 사회가 됐고, 2017년 8월 그 비율이 14%를 넘기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리고 2026년에는 전체의 20%를 상회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돌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고,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보편적인 문제가 됐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해법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요양(병)원 같은 시설 수용형 돌봄이 아니라, 살던 집 또는 살던 마을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총체적 돌봄 서비스를 실행하는 데 있다. 행복한 노년의 실현이 궁극적 목표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고령층의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한 것도 이 정책의 추진 근거가 됐다.
정부 계획대로 잘 돼서 ‘포용국가’로 나아가면 좋겠지만, 풀어야 할 문제도 산적하다. 중앙정부와 건강보험공단·지자체의 연계 체계 구축, 민관 협력 시스템 조성, 표준화 모형 개발 등이 중요하다. 하지만 역시 최대 관건은 돈과 인력이다. 고령화에 따른 통합돌봄 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재원과 인력을 어떻게 마련하고 양성할 것인가가 차기 정부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올해말까지인 1단계 기간 16개 시·군·구에서 모형 발굴을 위한 선도사업을 벌인 후 차기 정부로 넘긴다. 2단계 사업기간(2022~2026년)에 구체적인 재정 및 인력 운용 계획 마련과 통합돌봄의 보편적 시행까지 완료해야 한다. 차기 정부 임기와 정확히 겹친다. 갈등 요소도 많다. 당장 전문간호사(NP)의 업무 범위 등 방문의료 주도권을 둘러싼 의사·간호사 단체의 의견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그래서 통합돌봄은 차기 대통령 선거전의 중요 관전포인트다. 과연 어느 후보가 시대적 과제인 통합돌봄 시행을 위한 정책 의지를 가졌는지 따져 물어봐야 한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아툴 가완디가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언급했듯이, 아름다운 죽음은 없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누구나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삶을 살다 떠나기를 갈망한다. 노화로 인한 신체적 약화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깍두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공공 서비스가 든든한 울타리이자 기댈 언덕이 돼야 한다. 통합돌봄이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던 노화와 죽음을 사회적 과제로 치환시킨 정책이다. 여야 후보 중 누가 ‘깍두기들’의 진정한 ‘깐부’가 되어 줄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