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한살림생산자연합은 ‘한 고랑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한살림생협)에 농산물, 농산가공품 등을 공급하는 생산자들이 농사지은 수확물 일부를 소외되고 힘든 이웃에게 나누자는 운동이다. 처음에는 잉여 농산물과 B급 농산물로 도움을 주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웃을 위한 좋은 일에 출하하고 남은 것이나 무게와 크기가 규격에 맞지 않아 납품하지 못한 것을 내놓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농사의 일정 부분을 나눔용으로 짓자는 수정 제안이 나왔다. 그 취지를 살려 자연스럽게 ‘한 고랑 나눔 운동’이 됐다. 생산자들이 내놓은 나눔 물품은 지역 한살림생협에서 반찬이나 식품꾸러미 등으로 만들어져 그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지역아동센터, 쪽방촌 거주 독거노인, 그룹홈, 장애인시설, 나눔 냉장고 등에 끼니와 반찬으로 제공됐다. 또는 장애인 여성들이나 미혼모, 자립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식생활교육에서 식재료로도 쓰이고 있다.
일부 생산자들은 오래전부터 농산물 나눔을 펼쳐왔다. 형편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찾아 물품과 마음을 나눠온 것이다. 이렇게 지역에서 알음알음 전개되던 나눔이 생산자연합 차원으로 확대된 데에는 코로나19 사태가 한몫했다. 팬데믹으로 사회적 관계들이 단절되면서 생겨난 돌봄 공백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지난해 기상 재앙으로 농사에 큰 타격을 입으며 고통을 겪었던 생산자들이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마음을 낸 것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관계를 통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위기를 맞닥뜨리고 고통으로 내몰렸던 경험이 ‘독자 생존 불가’라는 인간의 숙명적 취약점을 절감하게끔 한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위기를 겪으면서 서로 돕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왔고, 이런 호혜적 인간관계가 인류 공동체를 진화시켜 온 작동원리였다.
하지만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이러한 인간의 오래된 미덕을 망가뜨렸다. 개인의 욕망에 바탕을 둔 물질문명은 약탈적 자원 남용과 무차별적 개발로 인간의 삶터를 거덜냈다. 풍요와 편리를 좇는 무한욕망은 사람과 자연 사이의 생태적 순환고리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호혜적 관계를 파괴해 버렸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세상은 호혜적 인간관계, ‘서로 돌봄’이라는 인류 공동체의 오랜 지혜를 외면하고 급기야는 국가체제가 마련한 공적 돌봄마저 시장으로 내몰아 상품화시켜 버렸다. 승자 독식의 무한경쟁 정글에서 서로 돌봄의 아름다운 유습은 그 빛이 바랬다.
호혜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돌봄이 돈으로 저울질되는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돌봄의 사각지대는 넓어지고, 그 그늘은 더욱 깊어졌다. 공적 돌봄을 위탁받은 돌봄 시장은 질보다 양을 앞세우고, 국가는 그를 관리하는 데 급급한 게 오늘날 돌봄 현실이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우리가 직면한 엄혹한 현실 속에 돌봄이 절실한 이들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인류 공동체가 맞닥뜨린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이 아니라 호혜적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 시대의 돌봄 또한 그 연장 선상에서 과감한 혁신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소외된 구성원들을 따듯하게 품으며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때 공동체는 온갖 ‘불협화’를 극복하고 성숙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취약한 구성원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통한 연대감이 살아 움직인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마음을 내어 서로 돌보는 가운데 좋은 삶을 함께 누리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소외계층은 의식주를 비롯한 삶의 모든 부분에서 취약하다. 특히 먹거리문제는 생명과 직결되고, 영양이나 건강에 있어서 취약성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양식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결코 공동체 안에서 잊히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우애이다.
한 지역 한살림생협에서 저소득 가구들에 반찬 나눔을 했다. 조합원들이 정성을 다해 한살림 식재료로 반찬을 만들어 제공했다. 나눔을 받은 이들은 “나도 유기농 음식을 먹었다, 마치 내가 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며 고마워했다. 질 좋은 먹거리는 그들의 식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존을 회복시킨다. 이 단순한 에피소드가 전해주는 시사점은 바로 ‘마음이 담긴 돌봄’에 닿아 있다.
오늘 부산에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주최로 부산시의 통합돌봄 기본계획과 연계한 먹거리 돌봄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린다. 그간 먹거리 돌봄이 뒤처졌던 지역에서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계기로 지자체와 민간의 협업을 통해 좋은 먹거리 돌봄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봄은 관계를 바탕으로 같은 눈높이로 주고받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돌봄의 마음은 인간의 존귀함과 거룩한 생명의 가치를 관계 속에서 구현해내는 모심의 마음이기도 하다.
한살림부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