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장병윤의 대안 모색] ‘돌봄’의 마음

  • 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
  •  |   입력 : 2021-11-04 19:49:13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봄 한살림생산자연합은 ‘한 고랑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한살림생협)에 농산물, 농산가공품 등을 공급하는 생산자들이 농사지은 수확물 일부를 소외되고 힘든 이웃에게 나누자는 운동이다. 처음에는 잉여 농산물과 B급 농산물로 도움을 주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웃을 위한 좋은 일에 출하하고 남은 것이나 무게와 크기가 규격에 맞지 않아 납품하지 못한 것을 내놓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농사의 일정 부분을 나눔용으로 짓자는 수정 제안이 나왔다. 그 취지를 살려 자연스럽게 ‘한 고랑 나눔 운동’이 됐다. 생산자들이 내놓은 나눔 물품은 지역 한살림생협에서 반찬이나 식품꾸러미 등으로 만들어져 그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지역아동센터, 쪽방촌 거주 독거노인, 그룹홈, 장애인시설, 나눔 냉장고 등에 끼니와 반찬으로 제공됐다. 또는 장애인 여성들이나 미혼모, 자립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식생활교육에서 식재료로도 쓰이고 있다.

일부 생산자들은 오래전부터 농산물 나눔을 펼쳐왔다. 형편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찾아 물품과 마음을 나눠온 것이다. 이렇게 지역에서 알음알음 전개되던 나눔이 생산자연합 차원으로 확대된 데에는 코로나19 사태가 한몫했다. 팬데믹으로 사회적 관계들이 단절되면서 생겨난 돌봄 공백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지난해 기상 재앙으로 농사에 큰 타격을 입으며 고통을 겪었던 생산자들이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마음을 낸 것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관계를 통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위기를 맞닥뜨리고 고통으로 내몰렸던 경험이 ‘독자 생존 불가’라는 인간의 숙명적 취약점을 절감하게끔 한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위기를 겪으면서 서로 돕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왔고, 이런 호혜적 인간관계가 인류 공동체를 진화시켜 온 작동원리였다.

하지만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이러한 인간의 오래된 미덕을 망가뜨렸다. 개인의 욕망에 바탕을 둔 물질문명은 약탈적 자원 남용과 무차별적 개발로 인간의 삶터를 거덜냈다. 풍요와 편리를 좇는 무한욕망은 사람과 자연 사이의 생태적 순환고리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호혜적 관계를 파괴해 버렸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세상은 호혜적 인간관계, ‘서로 돌봄’이라는 인류 공동체의 오랜 지혜를 외면하고 급기야는 국가체제가 마련한 공적 돌봄마저 시장으로 내몰아 상품화시켜 버렸다. 승자 독식의 무한경쟁 정글에서 서로 돌봄의 아름다운 유습은 그 빛이 바랬다.

호혜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돌봄이 돈으로 저울질되는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돌봄의 사각지대는 넓어지고, 그 그늘은 더욱 깊어졌다. 공적 돌봄을 위탁받은 돌봄 시장은 질보다 양을 앞세우고, 국가는 그를 관리하는 데 급급한 게 오늘날 돌봄 현실이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우리가 직면한 엄혹한 현실 속에 돌봄이 절실한 이들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인류 공동체가 맞닥뜨린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이 아니라 호혜적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 시대의 돌봄 또한 그 연장 선상에서 과감한 혁신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소외된 구성원들을 따듯하게 품으며 자립의 기회를 제공할 때 공동체는 온갖 ‘불협화’를 극복하고 성숙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취약한 구성원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통한 연대감이 살아 움직인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마음을 내어 서로 돌보는 가운데 좋은 삶을 함께 누리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소외계층은 의식주를 비롯한 삶의 모든 부분에서 취약하다. 특히 먹거리문제는 생명과 직결되고, 영양이나 건강에 있어서 취약성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양식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결코 공동체 안에서 잊히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우애이다.

한 지역 한살림생협에서 저소득 가구들에 반찬 나눔을 했다. 조합원들이 정성을 다해 한살림 식재료로 반찬을 만들어 제공했다. 나눔을 받은 이들은 “나도 유기농 음식을 먹었다, 마치 내가 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며 고마워했다. 질 좋은 먹거리는 그들의 식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존을 회복시킨다. 이 단순한 에피소드가 전해주는 시사점은 바로 ‘마음이 담긴 돌봄’에 닿아 있다.

오늘 부산에서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주최로 부산시의 통합돌봄 기본계획과 연계한 먹거리 돌봄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린다. 그간 먹거리 돌봄이 뒤처졌던 지역에서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계기로 지자체와 민간의 협업을 통해 좋은 먹거리 돌봄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봄은 관계를 바탕으로 같은 눈높이로 주고받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돌봄의 마음은 인간의 존귀함과 거룩한 생명의 가치를 관계 속에서 구현해내는 모심의 마음이기도 하다.

한살림부산 이사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해운대구서 70대 대리기사가 몰던 차량 연이은 충격으로 전복
  2. 2양정자이 100% 완판…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속 희망되나
  3. 3근교산&그너머 <1308> 전남 장흥 억불산
  4. 4단 한번도 없던 조합으로, 또 한번의 기적에 도전
  5. 5경남 중견업체도 무너졌다…지역 건설업계 줄도산 위기감
  6. 6“안전운임제 폐지 검토” 尹, 압박수위 더 높였다
  7. 7'재개발 통행로 실종' 막을까
  8. 8정부 ‘백기투항’ 요구…40분 만에 결렬, 원희룡 “정유·철강도 언제든 발동” 경고
  9. 9[이병주 타계 30주기…새로 읽는 나림 명작] <11> ‘쥘부채’
  10. 10전국 주유소 휘발유 8일분 남았다(종합)
  1. 1“안전운임제 폐지 검토” 尹, 압박수위 더 높였다
  2. 2"정치파업 악순환 차단" 벼르는 정부…노정관계 시계제로
  3. 3尹대통령 지지율 3%p 오른 32%…"도어스테핑 중단 책임" 57%
  4. 4이상민 해임건의안 본회의 보고 사실상 무산
  5. 5대통령 집무실·전직 대통령 사저 반경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
  6. 6北 이달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핵실험 계획 공개 가능"
  7. 7여야 예산안 합의 불발…법정시한 내 처리 미지수
  8. 8박영선 분당 가능성 또 언급
  9. 9[뭐라노] 산은 부산 이전 로드맵 짠다
  10. 10[뭐라노]내년부터 유통기한-소비기한입니다
  1. 1양정자이 100% 완판…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속 희망되나
  2. 2경남 중견업체도 무너졌다…지역 건설업계 줄도산 위기감
  3. 3'재개발 통행로 실종' 막을까
  4. 4정부 ‘백기투항’ 요구…40분 만에 결렬, 원희룡 “정유·철강도 언제든 발동” 경고
  5. 5전국 주유소 휘발유 8일분 남았다(종합)
  6. 6“균형발전 촉진” 먼저 온 금융공기업 ‘산업은행 부산행’ 웰컴
  7. 7에어부산, 부산~삿포로 2년9개월 만에 운항 재개
  8. 8외국인, 올 상반기 부산에서 482만6000㎡ 토지 보유
  9. 9정유업계 '업무개시명령' 초읽기…정부, 발동 준비 착수
  10. 10경제 9분기 연속 성장세...소상공인 체감경기 2달 연속 악화 왜?
  1. 1해운대구서 70대 대리기사가 몰던 차량 연이은 충격으로 전복
  2. 2민간사회안전망운동 양덕2동위원회, 김장김치로 사랑 나눠요
  3. 3고속도로 달리던 택배차, 작업 인부 들이받아 2명 사망
  4. 4경남지사 “내년 부·경 행정통합 여론조사”
  5. 5김해시 투자 유치 ‘대박’…지역 경제활성화 청신호
  6. 6검찰 ‘아들 퇴직금 50억’ 곽상도 징역 15년 구형
  7. 71달 만에 또 숙취운전... 부산경찰 직원 직위해제
  8. 8용돈 못 받아 홧김에…60대 노부 폭행한 30대 아들
  9. 9부산 울산 경남 아침 어제보다 더 추워...낮 4~9도
  10. 10정진웅 독직폭행 무죄 확정
  1. 1단 한번도 없던 조합으로, 또 한번의 기적에 도전
  2. 2폴란드, 아르헨티나에 지고도 토너먼트 진출...호주도 16강 행
  3. 3[조별리그 프리뷰] 이변의 연속 일본, 스페인 꺾고 죽음의 조 통과할까
  4. 4대표팀 호날두 페널티킥 주의보..."혜택 논란 일 정도로 천재적"
  5. 5불명예 기록 줄줄이…카타르 쓸쓸한 퇴장
  6. 6벤투 감독 빈자리 코스타 수석코치가 메운다
  7. 7네덜란드 vs 미국, 잉글랜드 vs 세네갈 16강 격돌
  8. 8카타르 월드컵 주요 경기- 12월 2일
  9. 9NC, FA 노진혁 보상선수로 안중열 지명
  10. 10'좌완 112승' 차우찬, 롯데서 마지막 불꽃
우리은행
한국마사회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이영희와 우영우, 그리고 우리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표류하는 가덕신공항
기고 [전체보기]
북극협력주간, 새 북극정책 20년 준비할 때
재난적 의료비 지원 범위 확대를 바란다
기명칼럼 [전체보기]
앞으로 남은 4년 6개월
낙동강 오리알
기자수첩 [전체보기]
경찰 억울? 희생자 입장서 보라
화포천습지를 동식물 복원 중심지로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민주당, 가망 있을까?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출산율 0.73 부산에 수의대를 허하라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부산대첩과 군악 대취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차라리 정권과 금융계 수장 임기 맞춰라
중요할 땐 사라지는 교육계 소통
도청도설 [전체보기]
킬리만자로의 눈
얼짱 축구선수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그까짓 거, 못 먹을 수도 있는 거죠
벼의 건조와 밥맛
사설 [전체보기]
자기 주장만 있는 예산 심의 국민이 용납 못한다
고리2호기 연장, 반쪽 공청회로 밀어붙일 일 아니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빨라야 위태롭지 않다
안전띠가 귀찮은 당신에게
아침숲길 [전체보기]
열심히 일한 당신, 쉼이 필요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험난한 선진외교의 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에너지 가치사슬의 완성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한국, 세계의 중심국이 되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부산을 그리다
중세 기후일탈과 대응을 현재에서 보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정치인의 언어
우리는 농업을 지킬 수 있을까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대한민국의 미래, 부울경 메가시티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난국 탈출, 대통령의 공감과 감응부터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한잔할래요?
와인은 외로워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절대음감
베토벤의 머리카락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석촌 윤용구의 ‘노근란’
신명연의 ‘양귀비꽃’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경영 시대, 민간과 공공 구분이 없다
메타버스 ‘오시리아 플랫폼’
  • 신춘문예공모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