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1일 일본에서 우리의 국회 격인 중의원 총선이 있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면 집권을 하게 되고 국정을 책임지게 된다. 그래서 총선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이번 총선을 눈여겨본 데는 아베 총리-스가 총리로 이어졌던 지난 10여 년간의 자민당 독주체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는 한일관계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으로 직결된다.
지난 10월 초 자민당 총재이자 총리였던 스가 총리가 재임 1년 단명으로 물러났다. 그를 이을 후임 자민당 총재로 기시다 후미오가 선출되어 새 총리가 되었다. 기시다가 총재로 선출되는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아베 전 총리였다.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가 총재로 선출된 것을 “아베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분석가들이 있을 정도다. 실제 아베의 사람들이 내각이나 당의 주요 포스트에 포진되었다.
이번 총선은 아베 총리가 구축한 자민당 장기 독주체제에 대해 일본 유권자들이 어떤 심판을 내릴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본 국민이 현상유지를 택해 자민당 독주체제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지 아니면 희망사항에 가깝긴 하더라도 변화를 택할지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한일관계의 앞날을 걱정하는 입장에 서면 당연히 일본 정치리더십에 변화가 와야 하기에 자민당 독주체제에 경고음을 내기를 은근히 바랐던 터이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집권 자민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마저 ‘절대 안정 다수’ 확보라는 결과였다. 총 465석 가운데 자민당이 과반을 넘는 261석을 얻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립당인 공명당 의석에다 강성 우파색채의 일본유신회도 약진함으로써 이들과 연합할 경우 개헌발의도 가능할 만한 의석을 얻었다. 이 결과에 따라 기시다 총리체제가 시동을 걸게 되었다. 총선 전만 하더라도 기시다 총리는 낮은 지지율 탓에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곤 했지만 총선 승리를 발판 삼아 일단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체제는 아베 전 총리가 구축했던 자민당 독주체제, 특히 강경 우파 정치를 벗어나 차별적인 정치를 구사할 수 있을까. 매우 부정적이다. 자민당의 강경 우파적 성향을 떨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아베 전 총리의 그늘이 너무 짙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노선이나 과거사를 대하는 태세에서 새로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아베 집권기 일본의 대외 방향성은 대국주의였다. 아베는 ‘정상국가’를 표방하면서 대국외교를 펼치게 되었는데, 이는 ‘힘의 우위’에 기반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미일 동맹의 강화를 축으로 호주 인도 영국 프랑스 등과 안보협력을 진전시켜나가는 외교였다. 지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구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도 사실 아베 총리가 제창하고 주도한 것이고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대립적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력체인 QUAD는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이미 제도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을 4강의 반열에 두고자 하고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단순한 국익 동기를 넘어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를 대립적이 아니라 협력적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들어 있다. 일본정부의 방향성과 대비된다.
대국외교의 한 요소로 이른바 ‘주요국’이 아닌 한국을 왕따시키는 경향을 꼽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한일관계의 발전과 한미일 협력을 외치면서도 한국과 거리두기로 일관하고 한일관계를 격하시킨 것이 아베의 대국외교였다.
다음으로, 아베는 식민지배로부터 이어지는 과거사에 대해 부정과 무시를 요체로 하는 역사수정주의로 일관했다.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과거 무라야마, 고노, 간 나오토 등 여러 일본 총리들이 표했던 담화를 부정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쳐왔다. 이 논리와 역사인식은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충돌하기에 한국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용인될 수 없고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는 최대 장애물이 되어 있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이렇게 전개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향후 한일관계를 전망할 때 암울함을 떨치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 제안에 응하지 않고 다음 정권을 기다리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정권을 누가 잡더라도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호락호락하게 다룰 수 없다. 게다가 기시다 내각이 아베 집권기의 대국외교를 계승해서 중국견제의 선봉에 서고 북한에 대해 압박정책을 구사하는 한 한일관계는 갈등을 내연한 채 개선의 돌파구를 열기가 어려울 것이다.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