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메디칼럼] 백제병원을 아시나요? /박지욱

  •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  |   입력 : 2021-11-15 19:05:04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얼마 전에 초량에 있는 옛 백제병원에 가보았다.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로 100년 가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도 처음 가보았다.

강서 명지 출신으로 일본에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 최용해는 1921년(혹은 1922년)에 백제의원을 개원했다. 5년 후 목조건물을 허물고 6층짜리 석조건물을 지어 1927년에 확장 개원한 것이 백제병원이다. 백제병원은 부산 최초의 근대식 사립(私立) 종합병원이다. 관립(官立)병원으로 광복동에 있던 부립(시립)병원(1877년 개원), 지금의 지하철 1호선 초량역 인근에 있던 철도병원(1923년 개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40병상 규모로 최 원장 외에 일본인과 독일인 의사도 일하는 다국적 진료진에 30명의 간호사가 근무했다. 아마 최용해 원장은 부산에서 가장 성공한 조선인 개원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5년도 되지 않아 병원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1932년에 최 원장은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잠적해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설에는 원장의 일본인 아내에 대한 거부감이라고도 하지만 부산의 다른 병원들이 일본의 관립병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맞지 않는 말이다. 다른 설명 중에는 병실에서 발견된 인골(人骨) 파문이 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행려병자(무연고자)가 죽자 그 시신을 최 원장이 골격표본으로 만들어 몰래 보관했는데 그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시민은 분노했고 불매운동에 나서는 바람에 병원이 망했다고 한다.

의사들이 시신을 해부하거나 골격 표본으로 만든 일은 우리에게는 충격적이겠지만 서양 근대 의학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백제병원의 인골 파문보다 50년 앞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는 16명이 희생된 ‘웨스트포트 살인’ 사건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었다. 2인조 연쇄살인범들은 자신이 운영하던 여관에 투숙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은 해부용으로 외과의사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겼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장물아비로 의사가 나설 정도로 당시에는 해부용 시신이 귀했다.

해부학이 의학의 필수과목인 된 것은 18세기다.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든 몸을 알아야 했다. 의사들은 가능하다면 많은 해부 경험을 쌓아 해부학을 익히고 병리학을 배웠다. 의학의 기본이 된 해부학과 병리학은 이러한 노력으로 토대를 쌓아갔다. 의학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시신은 귀했다. 처음에는 사형수들의 몸을 썼지만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인권의식이 신장되자 극형에 처해지는 범죄자들의 수가 급감했다. 그러자 묘지에서 시신을 도굴해 의사에게 비싼 값에 파는 도굴꾼들이 생겼다. 가난한 의사나 학생들은 직접 삽과 곡괭이를 메고 한밤중에 묘지로 나갔다.

웨스트포트의 연쇄살인마는 처음에는 의사에게 못 받은 방값이라도 받겠다고 투숙객의 시신을 넘겼다. 하지만 이 거래가 꽤 짭짤한 수입이 된다는 사실을 알자 본격적으로 멀쩡한 투숙객을 살해했다. 결국 살인범은 사형되어 해부를 당하고 골격표본이 되어 지금도 전시되고 있다. 불법을 눈감아 준 의사도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이 일자 영국 정부는 1828년에 해부법을 제정해 불법적인 인체 해부를 금지했다.

우리나라는 1910년에 경성부사(서울시장)가 행려병자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도록 한 기록이 있지만 1962년이 되어야 시체해부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니 1920년대의 최 원장이 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심은 법 감정과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혹시 모르는 숨은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왜 골격표본을 만들었을까? 누구의 몸이었을까? 독일인 의사는 왜 부산에서 일했을까? 유일한 조선인 사립병원은 왜 그렇게 재빨리 몰락해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넘어갔을까?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에 최 원장은 어떻게 살았을까? 무척 궁금하다. 100년 전 이 도시에 있었던 이 사건을 누가 좀 캐내면 좋겠다. 역량 있는 부산 작가가 소설로 써보면 어떨까? 이야기가 완성되면 붉은 벽돌 건물로만 덩그러니 남은 백제병원은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을까? 한번 기대해본다.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비…낮 최고 13~18도
  2. 2오픈AI 샘 올트만 깜짝 방한…삼성 사장단에 AI 특강(종합)
  3. 3[속보] 핼러윈 인파 혼잡에 6호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4. 4[속보]피 토하는 아들 방치하고 사망보험 가입한 보험설계사 母 징역 3년
  5. 5반도체 날개 달고 韓 수출 사상 첫 9000억 불 돌파…올해 1조 달러 달성할 듯
  6. 6롯데렌탈 매각 거래종결, 1조3000억원가량 대금 확보
  7. 7정부, “가덕도신공항 건설 대한 주민 의견 최대한 많이 들을 터”
  8. 8FBI, 바이낸스 가상화폐 8.4조원 털이범으로 북한 지목
  9. 9은행 부실채권 1년만에 1조3000억 늘었다…8년6개월만에 최대
  10. 10진주서 택시 화재…운전자 등 2명 화상
  1. 1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2. 2[속보] 국힘 장동혁, 李대통령에…“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나”
  3. 3한미일 외교장관 “北 완전한 비핵화 위한 의지 재확인”
  4. 4장동혁 “李대통령 ‘황제골프’ 수준 넘어 ‘민폐골프’”
  5. 5李대통령 "다문화 지원 필요하나 역차별까지 정당화 안 돼"
  6. 6진성준 뒤늦게 美비자 발급, 野"한미동맹 균열 드러낸 외교 망신"
  7. 7“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8. 8“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9. 9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10. 10[속보] 장동혁 “투표지 육안으로도 많은 문제…특검, 진실 밝혀야”
  1. 1오픈AI 샘 올트만 깜짝 방한…삼성 사장단에 AI 특강(종합)
  2. 2반도체 날개 달고 韓 수출 사상 첫 9000억 불 돌파…올해 1조 달러 달성할 듯
  3. 3롯데렌탈 매각 거래종결, 1조3000억원가량 대금 확보
  4. 4정부, “가덕도신공항 건설 대한 주민 의견 최대한 많이 들을 터”
  5. 5은행 부실채권 1년만에 1조3000억 늘었다…8년6개월만에 최대
  6. 6못 말리는 한국 제품 인기…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 눈앞에
  7. 71248회 로또 복권 1등 15명…당첨금 각 19억 3365만 원씩
  8. 8기초연금 받으면 부자?…수급 상위 1% 근로소득 월 220만원
  9. 9삼성 사장단 50여명, 샘 올트먼과 AI 미래전략 논의
  10. 10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0.5원 ↑
  1. 1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비…낮 최고 13~18도
  2. 2[속보] 핼러윈 인파 혼잡에 6호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3. 3[속보]피 토하는 아들 방치하고 사망보험 가입한 보험설계사 母 징역 3년
  4. 4진주서 택시 화재…운전자 등 2명 화상
  5. 5울산시, 노동안전감독과 신설 등 '2026년 하반기 조직개편안' 입법 예고
  6. 6북항 ‘부캉이’ 닷새째 자취 감춰…수온 하락 영향도
  7. 7민주콩고 에볼라 사망 5천명 넘어…확진자 절반 사망
  8. 8[날씨칼럼] 가을 하늘, 안전을 돕는 페이스메이커
  9. 9부산·울산·경남 대체로 맑음…낮 최고 19∼21도
  10. 10홍대서 ‘마약 사탕’ 신고…경찰 확인 결과 오인신고
  1. 1‘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2. 2“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3. 3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4. 4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5. 5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6. 6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9. 9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10. 10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클릭으로 여는 독도
지긋지긋한 론스타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출석 거부하며 장외 사실호도 일삼는 지광
AI 해킹 범죄 고도화…수사 공백 해소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