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고 했다. 내년 대선 결과를 놓고 우리 나라 국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까. 벌써 부터 여야 후보를 놓고 역대 최악이라는 등의 말이 나오는 걸로 봐서 ‘정치수준 = 국민수준’이라는 등식을 적용한다면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선거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경고를 흘려 듣기에는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년 3월 9일 실시되는 20대 대선에서 반드시 누군가를 선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등장한 유력후보들에게 언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양대 진영에서는 ‘너는?’이라는 네거티브 경쟁이 판을 치고 있다. 가뜩이나 대장동 의혹이니 고발사주 의혹이니 하는, 후보들을 겨냥한 온갖 의혹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다, 갈수록 의혹들을 재생산해내고 있으니 선택의 날은 다가오는데 유권자들의 마음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어떤 대통령이 필요할까. 바람직한 대통령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도 인정받는 대통령을 선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니편 내편’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 민생경제, 부동산 폭등, 지방소멸, 고사 직전인 소상공인 및 저소득층, 저출산·고령화, 국가부채 급증, 북한 핵 등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의 위기와 과제에 직면해있다. 이념을 필두로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 위기는 또 어떤가. 우선 순위를 정하기도 힘들 정도의 난제들이다.
내년에는 이처럼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찍을 사람이 없다’고 말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치 수준 보다는 높은 수준의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5년 뒤 바뀔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내놓고 경쟁한다면 ‘박수 받고 떠날 대통령’,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얼마전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문전박대(門前拍大·떠날 때 청와대 문 앞에서 박수받는 대통령)’가 소망이라고 했다. 이 수석은 “우리도 성공한 대통령, 떠날 때 박수 받는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박수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사람이 비단 이 수석 뿐이겠는가. 국민 모두의 소망일 수 있다. ‘박수 받고 떠나는 대통령’은 국가적인 축복이다. 문 대통령도 그럴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 취임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됐더라면, 2017년 5월 10일이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됐더라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났더라면,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했더라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했더라면,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었더라면, 소통하는 대통령이 됐더라면…. 취임사에서 했던 약속의 일부분만이라도 확실하게 지켜졌더라면 이 수석의 ‘문전박대’ 소망은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었다.
지금은 ‘문전박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떤 정치를 해왔는지를 돌아볼 때다. 문재인 정부 4년 반을 거치면서 보수·진보 진영간의 이념 갈등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심각해졌다. 진영논리가 진실을 앞지르면서 온갖 억지들이 판을 쳤다. 이젠 대선 과정에서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까지 더해지고 있다. 최소한 지금은 ‘박수받는 대통령’을 언급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아직도 기회는 남아있다. 선거중립관리다. 현 시점에서 보는 대선 결과는 5%p 미만, 적으면 1~2%p의 격차로 차기 대통령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엄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지 못해 불공정 시비를 남기면 불복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 자칫하면 국가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이 수석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예방한 자리에서 “여기 오기 전에 대통령께서 ‘선거에 대해 엄정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이야기를 하셨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야당도 문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지를 신뢰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산업통상자원부와 여성가족부 관료들이 민주당에 대선공약 자료를 넘긴 혐의로 고발됐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박범계 법무, 전해철 행안부 장관 등이 모두 민주당 출신인데다, 검찰과 공수처 경찰 중앙선관위도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로만 ‘엄정 중립’을 외친다고 중립이 담보될 것으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행동을 통한 확고한 중립의지 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임기자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