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2월 7일 미국 뉴욕 JFK공항. 젊고 잘생긴 영국 청년 네 명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항 주위에서 기다리던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들이 방문하는 곳에는 팬들의 고함과 절규가 뒤섞였다.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설리반 쇼’에 출연했고, 7300만 명이 시청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바로 비틀스다. ‘I Want To Hold Your Hand’로 빌보드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비틀스는 이후 각종 차트를 휩쓸며 역사를 썼다.
당시 영국에서는 롤링 스톤즈, 애니멀스, 더 후, 크림 등 전설 같은 밴드들이 비틀스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 비틀스가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영국 밴드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그렇게 영국 밴드들은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고 부른다. 비틀스가 뉴욕 땅을 처음 밟을 때만 해도 이런 현상이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일어난 지 50여 년이 흐른 2021년 11월 22일. 미국 3대 음악상 시상식으로 꼽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무대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방탄소년단(BTS)과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가 ‘My Universe’를 함께 부른 것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후계자인 콜드플레이는 21세기 세계 최고 밴드 중 하나다. 밴드의 보컬인 크리스 마틴과 BTS의 일곱 멤버가 뒤섞여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건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전통(?)을 케이팝 인베이전(K-Pop Invasion)이 공식적으로 계승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2년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도, BTS가 2015년부터 빌보드와 AMA에서 명성을 날릴 때도 케이팝 인베이전은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BTS가 올해 AMA에서 대상을 포함해 3관왕에 오르면서 마침내 케이팝 인베이전이 이뤄진 것 같다.
이제는 케이팝 인베이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케이컬처(K-Culture) 인베이전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했고, 올해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지옥’이 세계적인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더는 미국을 동경할 필요가 없다. 케이팝과 케이컬처가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이다.
김희국 신문국 에디터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