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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나운서들의 스포츠 중계방송 용어 /김병래

  • 김병래 전 KBS부산방송 아나운서 부장
  •  |   입력 : 2021-12-06 19:01:1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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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프로그램 중 스포츠 중계방송은 예나 지금이나 아나운서들만이 할 수 있는 업무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나운서들이 스포츠 중계방송을 한 것은 1933년 일제 강점기에 제2 우리말 방송이 시작되면서부터다. 그 당시는 주로 축구 야구 권투 등을 중계방송했다.

이때 중계방송을 했던 아나운서들은 거의 일본 아나운서들의 영향을 받아 일본식 용어와 형식을 구사했다. 대표적인 용어가 야구경기에서 ‘홈런’을 ‘호무랑’이라고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됐으며, 스포츠 중계방송도 큰 진전은 없었다.

이후 1960년대에 해설자가 등장하면서 스포츠 중계방송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스포츠 중계방송으로 명성을 떨친 아나운서들이 등장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지금도 연세 든 분들은 진공관 라디오 앞에 앉아 우리나라 선수들이 외국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중계방송했던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열광하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나운서들의 스포츠 중계방송은 잦은 영어 구사와 목소리를 높이면서 흥분해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6·25 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 국민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필자도 1969년 KBS 아나운서 공채로 입사한 후 스포츠 중계방송에 뜻을 두고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의 종목을 중계방송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또 영어로 된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 유식하고 유능한 아나운서가 되는 줄 알고 축구에서 키프 포지션(점유), 프레셔(압박), 파크 더 버스(밀집수비)라든가 야구에서 베이스온볼(볼넷), 힛바이피치드볼(몸에 맞는 볼) 등을 마구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아나운서들 스스로 지나치게 외래어를 남발하고 있음을 깨달아 순화된 우리말로 방송하자는 결의를 하고 개선해 나갔다. 축구의 경우 이미 굳어진 슛 파울 킥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우리말로 바꾸기 시작했다. 롱패스는 길게 이어주기, 쇼트패스는 짧게 이어주기, 크로스패스는 가로 이어주기, 코너킥은 구석차기, 하프라인은 중앙선, 센터 서클은 중앙원, 미드필드는 중간지점으로 바꿨다.

야구도 스트라이크 볼 아웃 등 일부 용어를 제외하고 모두 우리말로 바꿨다. 퍼스트 베이스 맨은 1루수, 세컨드 베이스 맨은 2루수, 서드 베이스 맨은 3루수, 숏은 유격수, 레프트필더는 좌익수, 센터필더는 중견수, 라이트필더는 우익수, 피처는 투수, 캐처는 포수, 러너는 주자 등으로 중계방송을 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방송하자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 스포츠 중계방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 뿌듯한 자긍심을 갖기도 했다.

야구 중계방송의 경우 “4 대 3 한 점 뒤지고 있는 롯데 9회 말 공격입니다. 투아웃에 러너 세컨에 두고 9번 타자 볼카운트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에서 삼성 피처의 인코너 볼 쳤습니다. 히트입니다. 숏 오버하는 클린히트입니다. 세컨 러너 홈인했습니다”를 “롯데의 9회 말 마지막 공격입니다. 4 대 3 한점 뒤지고 있는 가운데 9번 타자 투 스리에서 삼성 투수의 6구를 쳤습니다. 유격수 쪽으로 빠지는 안탑니다. 2루 주자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와 동점이 됐습니다”로 요즘에는 이렇게 알아듣기 좋게 방송을 하고 있다. 이는 축구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 배구 핸드볼 탁구 등 모든 경기도 마찬가지다. 이 얼마나 정겹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반면 요즘 우리 주변에서 쓰고 있는 말 중 필요 이상으로 외국말을 남용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지면상 전부 열거하지 못해 아쉽지만 가령 방송에 출연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사실’이라고 말하면 되는 데도 유독 ‘팩트’라고 한다.

그리고 마을을 운행하는 버스는 마을버스라고 하는데 비해 어린 학생을 태우고 다니는 버스는 학교버스가 아닌 스쿨버스란 이름을 달고 다닌다. 어느 말이 더 아름답고 정겨운지 우리 다 함께 진진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듣기 좋은 말은 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스포츠 중계방송 때 아나운서들이 영어로 된 용어를 남발하지 않고 우리말로 신바람 나게 중계방송하는 용어들은 두고두고 샛별같이 빛나리라.

전 KBS부산방송 아나운서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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