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포도나무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포도 넝쿨은 자손이 만대에 이어지며 번성한다는 생명력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풍성한 알맹이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했다. 포도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다람쥐는 복을 가져다주는 생명체의 의미가 있어 일반 민가에서 좋아했다. 이러한 길상적인 상징성이 그림에까지 영향을 끼쳐 많은 포도 그림이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에 상업이 발달하면서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그림이 대대적으로 유행한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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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미상 ‘묵포도’. 개인 소장 |
조선회화사에서 포도 그림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인물로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있다. 그의 아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자신의 어머니가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행장에서 증언했으며, 신사임당의 포도 그림에 대해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어느 잔칫날 국을 나르던 하녀가 한 부인의 치마에 국을 엎어버리는 바람에 치마가 젖었다. 이때 신사임당이 기지를 발휘해 치마에 포도 그림을 그려 하녀의 곤란한 상황을 구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만치 그의 포도 그림은 일품이었다고 전한다.
신사임당을 이어 휴휴당(休休堂) 이계호(李繼祜)의 포도 그림이 유명했으나, 역시 민간에 포도 그림을 유행시킨 이는 전라도 임피(臨陂)에 살던 낭곡(浪谷) 최석환(崔奭煥)이다. 최석환은 포도나무 가지를 태풍이 휘몰아치는 듯 굴곡이 심하게 그린 대작 병풍이 유명했다.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모란 그림과 함께 일세를 풍미했다. 이들 그림은 모두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실용적 예술이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포도 그림으로는 보기 드물게 유연하면서도 활기찬 작품이다. 정통 수묵화라 하기에는 전래의 전통 화법과는 많이 다르다. 활달하다 못해 자유분방한 면은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이 잘 발휘된 민화라 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화면 가운데 아래 부분에서 포도나무 줄기 하나가 땅에서 나오더니, 씩씩하게 자라 둥그런 선을 그리며 길게 뻗었다. 가지의 흔들림이 무척이나 흥겹다. 가늘고 긴 가지에는 넓고 싱싱한 잎이 무성하고, 듬직한 포도송이를 50여 개나 알차게 매달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다람쥐 여덟 마리는 포도나무가 자기의 집인 듯 가지에 올라 타 쳇바퀴 돌리듯이 신나게 왔다 갔다 한다. 많은 가지에 이것저것 잔뜩 매달려 있으니 마치 꽃이 활짝 핀 것 같기도 하고, 넝쿨이 흔들리는 것이 포도나무가 두 팔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인간 세상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인간 세상도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풍요로우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역병도, 경제적 어려움도 사라진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빈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