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가수 양병집의 1974년 노래 ‘타복네’(타박네)를 읊어본다. “타복타복 타복네야, 너 어드메 울며 가니/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로 찾아간다/물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산 높아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 다음은 같은 해 나온 ‘서울 하늘’(번안곡). “두 번 다시 안 올랍니다/아~두 번 다시 안 올랍니다/화려하고 머리 복잡한/서울 하늘 밑으로.” 가장 친숙한 양병집의 노래는 번안곡 ‘역(逆)’일 것이다. 이 노래는 포크 가수 고 김광석 등이 제목을 바꿔 새로이 불렀다. 그 제목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이다.
양병집은 1950년 12월(어떤 자료에는 1949년 2월 또는 1951년) 부산 구포에서 태어났다. 양병집 자신이 쓴 자전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북랩·2021년) 등을 검색해 살펴보니 그의 부산 시절이 자아 형성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양병집은 1974년 첫 음반 ‘넋두리’를 냈다. 그 즈음 미국을 중심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포크 음악의 저항성·비판성·서정성·사실성을 담은 앨범이다. 당시 한국 독재정권은 이 음반 속 노래 상당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 데 이어 아예 앨범을 회수해 버린다.
이를 계기로 양병집은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1970년대 대표 저항 포크 가수’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자리 매김 한다. 이렇게 되니 재미 있는 현상을 포착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혁명’을 일으킨 가객인 한대수 또한 부산 동래 온천장 명문가에서 1948년 태어났고 부산의 경남중·고를 다녔기 때문이다. 한대수 양병집 김민기 세 거장 가운데 한대수 양병집이 ‘부산 사람’인 셈인데, 이건 제대로 챙기고 기념할 할 일 아닌가 말이다.
가객 양병집이 지난 24일 서울 자택에서 타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숨진 상태에서 발견됐다. 향년 70세. 세월이 흐르면서 잊히기도 했지만, 양병집이 한국 대중예술사의 거인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후진 양성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의 글을 보면, 양병집이 서울 신촌에서 운영한 라이브 카페에 “최성원 조동익이 있었고 허성욱과 전인권이 만났으며, 해바라기의 유익종과 이주호도 함께 거기에 있었다”고 하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고향 부산에서 김일두를 필두로 아이씨밴드,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등 선배 양병집의 노래 정신과 맞닿는 후배 음악인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음을 고인이 알았다면, 흐뭇해 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봉권 기획에디터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