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세월호제주기억관’을 찾았던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다는 발표가 나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4·3평화공원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이 기억관은 세월호가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대표적인 오름인 산굼부리로 향했을 길목을 지키고 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운영하며 1개월 단위로 생일을 맞는 단원고 학생들 얼굴과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 각종 서적과 조형물들로 꾸며진다.
‘그날, 모두 구할 수 있었다’는 제목을 단 ‘세월호 참사 당일 시간대별 기록’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 최초 신고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할 것 같아요”와 10시 17분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카톡 등 급박했던 상황을 정리했다. 탑승 476명, 희생 304명, 탈출 172명이란 숫자가 뚜렷하다.
기억관을 관리하는 활동가는 살뜰하게 전시물을 설명했으나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선 어투를 달리했다. “용서할 수는 있겠지만 잊을 순 없는 일이지요.” 짧지만 전하려는 메시지가 선명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청와대 앞에서 더 명확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민변세월호참사TF는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당일 컨트롤 타워의 부재, 청와대의 직무유기와 관련해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면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왜 참사 당일 국민을 구하지 않았는지 책임을 못 밝혔고, 당연히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은 이를 특별사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세월호 참사 책임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는 것은 촛불혁명의 후퇴이며, 시대정신의 파괴”라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은 자유의 몸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은 옥중서신을 모은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됐다.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아서 관저에서 관련 보고를 받았다”거나 “세월호가 침몰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해괴한 루머와 악의적인 모함들이 있었지만 진실의 힘을 믿었기에 침묵하고 있었다”니 해명이나 책임이라기보다는 부족하더라도 할 바는 했음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정치적으로 소모되고, 세월호의 진실은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우선 사면 시점 자체가 정치적이다. 자신의 통치 기간보다 긴 영어의 시간, 그리고 건강 악화라는 현실론이 나왔다. 청와대는 통치권자의 결단이라며 국민화합을 언급했다. 그러나 무엇엔가 등 떠밀리듯 이뤄진 일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오는 3월 대통령 선거에 박 전 대통령이 미칠 정치적 영향력으로 수렴된다. 당장 이런저럼 셈법이 분분하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보다 더 유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그 예다. 국제신문과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에게 유리 40.5%, 윤 후보에 유리 31.6%였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특히 박 전 대통령 사면으로 세월호 구조 방기 이유와 책임을 확인하고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계기로 삼자는 바람에서 더 멀어지고 있어 마뜩잖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종료를 앞뒀고, 유력 대권 후보들은 애써 피하려는 듯한 분위기이며,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은 오불관언이다. 물론 박 전 대통령에게 22년 징역형을 단죄한 죄목에 세월호는 없다.
다시 제주기억관. 활동가는 트라우마 이야기를 했다. 상체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해서 보디빌더 선수 빰치는 한 생존자의 사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친구를 떠나보낸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상체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그건 비단 당시 상황을 경험했던 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겪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부재라는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봄이 오면 세월호를 떠올릴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 새로 뽑힌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을 앞두고 국정 과제를 다듬을 시기다. 그 전에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입원 중인 박 전 대통령이 퇴원할 것으로 알려진 2월 초 무렵 내놓을 대국민 메시지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고 엉킨 실타래도 한 올 한 올 풀려질 것으로 믿는다”고 밝힌 박 전 대통령이 결자해지 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5월 한나라당 대표로 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한 뒤 병원에서 “대전은요?”라고 물으며 압도적인 지방선거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세월호는요?”라는 절규에 답해야 한다.
논설실장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