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졌다. 6월 민주항쟁의 결실이기도 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이 모두 출마했다. 16년 만에 부활한 직선제와 ‘3김’의 가세로 대선 경쟁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펼쳐졌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유세 규모였다. 당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서울 여의도 유세에 100만 명 이상 참가한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했다. 참가자 규모는 언론사 집계, 주최 측 주장, 경찰 추산 모두 달랐다. 주최 측 주장으로 400만 명이 참가한 유세도 있었다. 100만 명 또는 400만 명을 말로 표현하니 그 규모가 제대로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을 보면 여의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찾아보길 권한다.
한마디로 규모의 전쟁이었다. 전쟁은 서울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후보들은 자기 지역 기반을 중심으로 군중을 앞세워 세몰이를 했다. 당시 부산에서도 수영만에서 열린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의 유세에 50만 명이 몰렸다는 언론 보도가 있을 정도다. 신기한 점은 이런 규모의 전쟁이 5년 뒤 대선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규모 군중을 동원해야 하는 어려움, 시민 불편 가중, 지역감정 고조 등 단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2022년 선거 운동은 완전히 달라졌다. 100만 명 유세는 이젠 역사책이나 유튜브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 됐다. 예전과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지하철에서 유권자들과 소통하려는 후보의 모습이다. 지난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혼자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유튜브 생방송을 했다. 셀카봉에 달린 스마트폰이 전부였다. 앞서 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홀로 서울의 출근길 ‘지옥철’을 체험했다. 온몸으로 지옥철을 겪으며 시민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처럼 2022년에는 1987년보다 훨씬 발전한 IT 기술을 바탕으로 유권자에게 먼저 다가간다. 또 무겁고 진지한 담론보다 소소한 일상 공약에 주력한다. SNS를 기반으로 특정 계층을 겨냥한 맞춤형 공약도 제시한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대선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지역과 조직 위주의 선거가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반면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비전이 사라지고 대선이 한없이 가벼워진다고 우려한다.
문득 30년 후에는 대선이 어떻게 치러질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상상력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