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農(농민 농업 농촌) 문제 해결로 국민 행복을 이루자는 기치를 내걸고 전국을 돈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이 그제 서울에서 두 달여의 장정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10월 26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8개도 18개 시군을 순회한 대행진은 황폐해진 농업 현실을 직시하고 농촌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했다. 그리고 이를 ‘농정 대전환을 위한 정책’으로 정리해 대선후보들에게 제안했다.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 위기, 식량 위기, 지방소멸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농촌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대행진의 커다란 성과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농업예산 확대, 지역 위기 극복을 위한 농촌주민수당 지급, 식량주권을 위한 먹을거리 기본법 제정 등 ‘3綱6略’의 실천방안을 마련했다.
대행진은 가는 곳마다 민회를 열어 농촌과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과제에 대해 현장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쓴이도 창원에서 열린 경남 대행진에 참석했는데, 함께한 농민은 위기에 처한 농업과 농촌의 다급한 상황을 절규했다. 그간 우리 사회나 국가가 얼마나 농업을 홀대하고 농촌을 외면해 왔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회에서 농민은 경자유전의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채 농토가 투기장이 된 현실을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외지인의 농토 투기로 농지가격이 급격히 올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는 것이다. 부재지주의 급증은 무분별한 농지전용의 폐단으로 이어진다. 대규모 태양광발전이 논밭을 잠식하고, 모텔 등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등 농지를 사회적으로 압살하고 있다.
농촌을 도시의 후방 보급기지쯤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도시에서 쏟아져나오는 무수한 쓰레기의 하치장이 된 농촌의 현실이 가뜩이나 어려운 농업환경을 더욱 악화시킨다. 건축폐기물을 비롯한 산폐물, 생활쓰레기에다 의료폐기물까지 무차별적으로 반입돼 마구 버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단지와 폐기물처리장이 패키지로 추진되면서 농촌의 자연환경과 생활 터전을 파괴하고 오염시킬 우려가 커진다.
정부의 근시안적 농업정책도 화근덩어리다. 식량자급률이 20%밖에 되지 않는 데도 농지 훼손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한다. 관료들은 식량이 모자라면 수입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절어 있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사태 속에서 100% 이상의 식량자급률을 가진 선진국들이 농업지원을 강화하는 것과는 비교된다. 기실 우리도 엄청난 농업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그 과실이 농민이 아니라 농기계나 농자재, 화학비료와 농약회사 등 기업에 돌아간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허울 아래 경쟁적으로 농촌 인프라를 건설하지만 대부분 적자투성이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농촌에 대한 빗나간 인식이나 정책은 농촌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농민의 삶을 벼랑으로 내몬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자본이 설쳐대면서 전래의 소농과 농촌공동체가 무너지는 현상은 전 세계적이다.
근대 자본주의 이래 농업은 철저하게 유린됐다. 돈이 잣대가 되면서 농업은 산업의 한 부분으로, 먹을거리는 상품의 하나로 전락했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에 저임노동의 하부구조가 돼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발전했지만 농민은 그 성과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그뿐 아니라 수출중심의 기업을 위해 온갖 불리한 여건을 떠안으며 볼모잡히는 신세다.
산업화과정 천하지대본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농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공익적 가치를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자연히 국민총생산의 2%에 불과한 농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전체 인구의 4%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움츠러들기가 십상이다.
위기의 농업과 농촌을 되살리려면 정책의 대전환이 급하다. 모든 산업의 근간으로서 농업이 국가 경제의 초석임을 인식하고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 또 규모의 영농이니 6차산업이니 번지르르한 구호를 내세우며 엉뚱한 곳에 돈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유기소농 육성으로 오랜 지혜와 호혜의 정신을 계승하는 농촌공동체 복원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농촌과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도시소비자들의 시선이 농촌부흥을 좌우한다. 농업은 생존의 기본조건인 먹을 것을 줄 뿐만 아니라. 총체적 삶을 규정하는 정신적 문화적 토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산야가 어우러진 농촌 풍광은 우리가 자연에 연결돼 있음과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넉넉하고 따듯한 농심은 우리가 삭막한 도시에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위안을 준다.
오늘날 농업이 붕괴하고 농촌공동체가 해체되고 농민들이 소멸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빈사지경에 이른 농업을 구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자식에게 모두 내어주고 앙상한 몰골로 남은 늙은 어머니 같은 농촌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