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서울로 이사해 작년 6월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8년 동안 서울 생활을 한 셈이다. 직업 때문에 새로운 음식에 적응하는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익숙한 방식과 결별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대표적으로 순대를 찍어 먹는 방식이다. 부산에서 순대는 당연히 쌈장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소금에 찍어 먹는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소금 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힘들었다. 쌈장을 끊는데 2년 정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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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프라이가 빠진 간짜장은 간짜장이 아니다. |
순대를 극복하니 또 하나의 복병이 등장했다. 이건 정말 서울시민으로 살면서 발견한 차이다. 돼지국밥을 무시로 먹던 습관은 서울에서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돼지국밥 못지않게 맛있는 순대국밥 집이 서울에는 아주 많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에 대한 갈증을 풀면서 돼지국밥과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뭔가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늘이 없었다. 생양파와 풋고추는 주는데 마늘이 없다. ‘어떻게 마늘 없이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늘을 따로 요구하면 주는 곳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나는 결국 이것조차 극복했다. 소금만으로 순대를 먹고, 마늘 없이 순대국밥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서울사람이 다 됐다고 믿었다.
그런데 부산으로 돌아올 때까지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 계란프라이가 없는 간짜장은 절대 타협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는 당연히 올리는 계란프라이가 서울 간짜장에는 없다. 자고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당연히 있던 것이 없을 때의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계란프라이에 대한 부산 사람들의 유난스러운 집착에 대해 일부 서울 사람들은 살짝 비꼬는 투로 ‘순진하다’고 표현한다. 나는 이런 무례한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간짜장과 계란프라이의 관계는 맛과 역사의 측면에서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간짜장에 올리는 계란프라이는 기름을 넉넉히 두른 중국식 팬에 튀기듯이 굽는다. 그것도 노른자는 익히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계란 노른자를 터트려 간짜장 소스와 함께 비비면 면의 윤기도 달라지고 볶은 춘장과 계란 노른자가 만나 풍미가 훨씬 강해진다. 계란프라이는 그냥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간짜장의 맛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역사적으로 더 흥미롭다. 산업화시대 우리 정부의 중요한 경제정책 중 하나는 물가안정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계 깊은 품목들을 설정해 국가가 강력하게 관리했다.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짜장면도 그중 하나였다. 짜장면 가격은 업주 마음대로 올릴 수 없었다. 국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짜장면은 짜장면인데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가격을 재량껏 책정할 수 있는 메뉴가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간짜장 삼선짜장 사천짜장 유니짜장 등이다. 가격을 더 받으려니 어떻게든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간짜장에 계란프라이 하나를 떡하니 올렸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이조차 굉장히 차별적 시도였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살피는 것이 음식의 스토리다. 부산 사람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값싼 계란프라이가 아니라, 계란프라이의 존재 이유이며 그것으로 행복했던 우리들의 기억이다. 그러니 사소한 전통을 무시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