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악화된 한일관계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정치지도자들, 재계 인사들, 한일 전문가집단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만나는 일반 국민까지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사로부터 이어져 나온 문제들을 두고 한일 두 정부 간의 갈등 양상이 한껏 고조된 데다가, 2019년 여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경제갈등이 등장하면서 한일관계가 한층 악화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의 발발로 인해 인적교류마저 끊기다시피 한 것이 한일관계의 현주소다.
냉정하게 볼 때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악화된 한일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난 주말 하와이에서의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정의용 외교장관과 일본의 하야시 외무장관이 미국의 주선 아래 모처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 현안들에 대해서 기존 양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친 나머지 역사갈등에 대해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짐작건대 일본 정부는 곧 있을 한국의 대선과 그에 따른 차기 정부의 출범을 염두에 두고 기다리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이 전략이 유효할 것 같지도 않지만, 우리로서는 차기 정부의 출범에 발맞춰 한일관계 발전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선 후보들은 한껏 악화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라는 안팎의 압박에 부응하려는 차원에서 한일관계 관련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여야의 두 주요 후보가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21세기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주목하고 정치적 해법의 모델로 인식하면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채택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일 두 정부 쌍방으로부터 역사갈등 문제를 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새 정부는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난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정부의 의지에 더해 피해자들, 정당, 기타 이해 상관자들과의 소통과 협조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그 이행 과정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요구되는 자금 조달에 관해서도 한국 정부가 적극성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어쩌면 더 중요하게도, 공은 일본 정부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베 내각이 견지했던 문제투성이인 역사수정주의 노선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일본의 집권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이 과거사 문제들에 대해 아베 정부 기간에 실종됐던 감수성을 복구하고 발휘해야 하는 일이다. 1990년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그리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불과 10여 년 전인 2010년에 간 나오토 총리가 행한 ‘간 담화’ 수준-역사 직시 반성 사죄-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갈등은 돌파구를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의 해법 가운데 최상은 ‘역사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역사화해의 출발 역시 일본 정치지도자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보이면서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차기 한국 지도자가 역사화해를 위해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출발이 이렇게 되면 위안부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얼마든지 가능해지며, 강제동원(징용) 문제도 대화를 통해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대화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앞에서 말한 정의용-하야시 회담에서도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긍정적인 또 하나의 요소는 한·미·일 협력에 대한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력해 미국이 앞으로도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매개 역할을 해나갈 것이란 점이다.
이런 필요와 흐름에 따라 한국의 새 정부는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대일외교에 응해야 할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이전의 투트랙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멀티트랙 외교’로 접근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기존 역사 직시, 경제 안보 미래지향적 협력에 더해 대전환기에 공통의 이슈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기후변화 팬데믹 공급망 교란 등 글로벌 차원의 의제들을 대응하는 데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한일 두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