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선조들이 기록물로 후세에 남긴 문화유산이 많다. 특히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을 포함, 총 16개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오래된 기록물이 중요한 이유는 문화의 중요성이 커진 현시대에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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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이미지. MBC 제공 |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조선시대 왕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정조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했다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정조가 남긴 ‘어제의빈묘지명(御製宜嬪墓誌銘)’에 힌트가 있다. 중전도 아닌 후궁의 죽음에 대해 장문의 기록을 직접 남긴 것에 모티브를 얻어 사실과 상상력이 더해진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정조는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왕임을 사료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에는 정조가 사직단 제례에서 제례악을 연주하다 틀린 악기와 틀린 음을 정확히 지적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정조실록’에는 제례악 연주에서 곡 수를 줄이거나 음악을 건너뛰어 연주시간이 짧아진 것을 짚어내어 실제로 그 책임자를 파직한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한 제사음악 경모궁제례악을 만들고 연주악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악기 제작에 관한 기록은 의궤에, 악보는 ‘속악원보’에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필자가 2013년 미국의 음향회사 돌비(DOLBY) 초청연주회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때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화성능행반차도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특별전인 ‘조선 왕실, 잔치를 열다’의 전시 광고를 본 것이었다. 이 반차도는 1795년 정조의 수원 화성 능행차를 묘사한 두루마리 채색도인데 서울 창덕궁에서부터 화성시 융릉에 이르는 59.2㎞ 구간의 행차를 묘사한 그림으로 김홍도를 비롯한 규장각 화원들이 제작한 목판화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1799명의 사람과 786마리의 말은 같은 표정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수행원 약 6000명, 말 1400필, 총예산 10만 냥(현재 화폐가치 약 70억 원)의 엄청난 국가행사인 8일간의 화성행차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의궤에 담아 놓았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2017년에는 정조대왕 능행차가 222년 만에 완벽하게 재현될 수 있었고, 이후 디지털 영상으로도 관람할 수 있는 콘텐츠로 발전했다.
과거의 기록유산은 후손들이 역사를 재현하기도 하고, 문화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콘텐츠를 재탄생시키며 현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K로 시작하는 한국의 문화 전반이 세계시장서 주목받고 있는 요즘,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옛것에서 지금의 우리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를 찾을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