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언수의 책을 처음 만난 곳은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있는 YES 24 중고서점의 ‘외국 도서’ 코너였다. ‘Plotters’라는 제목의 영문 소설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더니 지은이가 Un-Su Kim으로 적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책은 작가 김언수가 ‘설계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독자에게 먼저 선보였고, 그 뒤 영어로 번역됐다. ‘설계자들’을 읽고 한 차례 김언수에게 ‘감전’된 뒤 곧바로 잡은 그의 다른 책이 장편소설 ‘뜨거운 피’였다.

‘뜨거운 피’의 책날개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작가 김언수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작가가 된 것이다. 부산 서구 암남동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오랫동안 살고있는 친구를 만났을 때 김언수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런 ‘증언’이 튀어나왔다. “나, 김언수 알아. 청소년 시절을 같이 보냈지.” 김언수 작가는 부산에서 나고자란 토박이였던 거다.

“저는 부산 토박이예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부산에 살았죠. … 영도에서 살았고 그 건너편 송도, 감천, 남부민, 아미동 이런 곳에서도 살았죠.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거기서 다녔고.”(문학웹진 채널예스에 실린 김언수 인터뷰 중) 장편소설 ‘뜨거운 피’는 정확히 부산의 송도·영도·남부민동·충무동·초장동·산복도로가 무대다. 다른 장소는 안 나온다고 보면 된다. 1980~1990년대 이곳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꽤 반가운 작품일 것이다.

이 소설은 ‘뜨거운 피’라는 제목만큼이나 실제로 뜨겁다. 등장인물은 온통 건달이고, 대화는 걸걸하고, 욕설·폭력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어쩌랴, 그 속에 우리네 뜨거운 삶이 있었음을. 게다가 부산말이 갖는 리듬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참고로 이 장편소설은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구암(狗巖)의 건달들은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 끈끈하고 웃기고 진하고 질기고 진실한 이야기는 그렇게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불멸의 괴작 소설 ‘고래’로 유명한 작가 천명관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그의 감독 데뷔 영화가 바로 오는 23일 개봉하는 ‘뜨거운 피’다. 소설가 김언수 원작에 소설가 천명관이 감독한 ‘뜨거운 피’가 또 하나의 부산 콘텐츠로 관객과 시민의 환대와 선택을 받을지 궁금하다. 원작을 보면 부산 바다와 항구를 무대로 주인공 희수는 부산 기질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연은 정우(희수 역)와 김갑수(손영감 역)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