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사전협상제가 흔들린다. 부산시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지만, 시민단체는 그 역시 민간업자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라며 사전협상제 폐기를 주장한다. 현재 논란이 되는 사업장은 기장군 한국유리 부지와 남구 옛 부산외대 부지 두 곳이다. 민간사업자가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산 1호 사전협상지인 옛 한진CY 부지의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심은 ‘시가 개발이 불가능한 땅의 용도를 변경해 아파트 단지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부산에 사전협상제가 도입된 것은 2016년이다. 북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신항으로 이동하면서 도심 속 유휴부지로 남은 한진CY 부지는 2017년 8월 사전협상 대상지로 지정돼 개발 계획과 공공기여 방안을 놓고 협상을 벌여왔다.
2020년 6월께 8회의 협상조정위원회를 거쳐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학교 증축 등의 반대 민원이 제기되면서 2년이 넘게 진행된 사전협상이 깨질 상황에 놓였다. 사업자 측이 협상을 포기하고, 원래 용도인 공업지역으로 오피스텔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시민단체는 한진CY는 제2의 엘시티가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시 입장에서는 개발 수요가 많은 노른자 땅이 성냥갑 모양으로 변하는 걸 방치할 수 없었다.
대상지 지정 5년 만인 지난해 12월 15일 한진CY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이 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내용을 보면 한진CY 지주인 삼미D&C는 2200억 원의 공공기여금과 490억 원의 기반시설 조성비용을 내기로 했다. 공공기여금의 70%는 창업시설인 ‘유니콘타워 센텀’ 건립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시에 현금으로 기부한다.
시가 경제 관련 부서별로 유니콘타워에 입주할 기업을 조사했는데 며칠 만에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정도로 입주 희망 기업이 많았다. 시의 최대 현안은 일자리다. 들어올 기업이 넘쳐난다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상지로 지정된 한국유리 부지와 대상지 지정 절차가 진행 중인 옛 부산외대 부지도 주거와 일자리를 동시 만족시킬 수 있는 최상의 안이 마련돼야 한다. 민간사업자가 내놓은 안으로는 지역 사회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한국유리 부지 사업자인 ㈜동일스위트가 시에 제출한 사업 제안을 보면 전체 면적 가운데 48%에 주거시설을 짓고, 복합체육문화시설 등 1330억 원가량의 공공기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협상단을 꾸리고 본격적인 논의에 나서면 수차례 사업안이 변경되겠지만 벌써 사업 제안이 아파트와 상업시설 위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안 쪽에 공공기여분인 해양·복합체육문화시설이 배치돼 해안 경관 사유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시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부산외대 부지는 한국주택공사(LH)의 공영개발 안이 기준으로 작용했다. 시는 주거용지 비율은 38%, 업무용지 비율은 39.1%, 공공기여분은 1만2906㎡ 등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LH 개발안보다도 공공성이 강화된 수치다. 당시 LH의 주거용지 비율은 38.5%, 업무용지 비율은 31.6%, 무상양여 7500㎡ 등이었다. 시는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이곳을 게임산업 거점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사전협상제는 민간에 사업이익을 거둘 기회를 주는 대신 유휴부지를 개발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최신형 민관 합작사업이다. 민간사업자에게 ‘이익을 모두 내놓지 않으면 사업을 하지 마라’는 식의 주장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 하지만 공업지역을 상업지역으로, 녹지를 주거지역으로 바꿔 사업성을 높여주는 것은 합법적 특혜다. 사전협상제가 필요한 사업자라면 사업성과 지역 사회 발전이라는 가치가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