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이 늦다. 추위도 길었고 봄 가뭄도 심했다. 무엇보다 질병과 전쟁으로 온 세상이 어수선하니 우리의 마음이 봄을 맞이 할 준비가 안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목련이다 개나리다 봄꽃을 헤아리는 그런 여유를 올해는 나도 모르게 잊어버렸다. 계절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데 어느새 봄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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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의 ‘춘일취기언지’. |
예로부터 봄은 작곡가들이 가장 즐겨 음악으로 표현했던 계절이다. 봄의 음악 중 최고는 단연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선호한다는 통계가 있다. 슈만도 교향곡 1번에 ‘봄’이란 부제를 붙인다. 장인이자 스승인 비크의 반대를 무릅쓰고 클라라와 결혼한 슈만의 행복하고 희망에 찬 모습이 이 교향곡에 잘 나타나 있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종달새’도 봄을 노래하고,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암스도 관현악곡 ‘종달새의 비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왈츠’나 멘델스존의 ‘봄노래’도 빠질 수 없는 봄의 단골곡이다. 봄을 노래한 가곡은 셀 수 없이 많다. 홍난파의 ‘봄처녀 제 오시네…’란 우리 가곡이 입가에 맴돈다.
슈베르트는 특히 봄에 대한 노래가 많은데 연가곡 겨울나그네에서 ‘봄의 꿈’을, 백조의 노래에서는 ‘봄의 동경’을 남기고 있다. 그의 어둡고 슬픈 노래들 속에서 봄은 마지막 희망의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독일계 영국작곡가 프레데릭 딜리우스는 실내악 ‘봄의 첫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란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의 음악은 주로 자연을 노래하는데 플로리다와 스칸디나비아, 프랑스의 시골에서 살았던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삶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투영된 결과이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음악이다. 봄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한 곡이라면 단연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의 야수파가 연상되는 이 강렬한 음악은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러시아 이교도 의식을 그리고 있다. 초연 당시 강력한 불협화음과 리듬으로 큰 충격을 주었던 현대음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이십세기 미국을 가장 대표하는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의 발레음악 ‘애팔래치아의 봄’도 유명하다. 마샤 그레이엄의 의뢰로 작곡된 이 작품은 펜실베니아주의 한 농가의 결혼식을 통해 젊은 부부의 희망과 인생을 노래하는 밝은 곡으로 퓰리처상도 받았다.
슬픈 봄의 노래도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유작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제2곡 ‘봄’에서 봄의 아름다움에 취한 채 세상에 이별을 고하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도 사무치게 아름답고 심오하고 슬프다. 총6곡 중 이백의 시에 기초한 제5곡 ‘봄에 술 취한 자’에서 역시 봄이 노래되고 있다. 이 당시 말러는 딸의 죽음과 본인의 건강, 직장 등 인생의 큰 타격을 동시에 받았다. 말러는 평생을 치열하게 음악으로 구원받으려고 했으나 여기에선 담담한 삶의 관조가 보인다.
‘세상사 꿈과 같은데 어찌해 괴롭게 사는가? 술에서 깨어 정원을 보니 새가 꽃 사이에서 울고 있네. 지금이 무슨 계절인가 물어보니 봄바람이 꾀꼬리와 말하고 있네’.(이백, 춘일취기언지)
올해의 봄은 말러의 음악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마냥 우울할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봄은 그래도 희망이고 소망이다. 오늘은 모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프링’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