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내년 4월 8일 40년의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2호기를 계속 사용하기로 하고 평가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한수원은 일부 설비만 개선하면 설계수명이 끝나도 계속 운전이 가능하다는 내외부 평가 결과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탈원전 폐기 공약 이행을 본격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윤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원전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원전 산업생태계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리 2호기 평가보고서가 제출되면서 2030년까지 멈추게 되는 원전 10기도 가동을 연장하게 될 전망이다.

한수원이 내외부 평가를 받았다고 하나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자료 없이 이를 추진해 지역의 반발이 드세다. 원전이 다른 전력원보다 사고로 인한 사망위험, 온실가스 배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으나 안전성, 친환경성, 경제성 검증자료 없이 밀어붙여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핵발전강국을 만들겠다며 부산 울산 경남 주민에게 위험과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 아닌가.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노후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한 것은 지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지난해에는 경주 월성원전 부지 내 일부 지하수에서 꽤 높은 수준의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고 최근에는 강원도 산불 사태 당시 산불이 울진원전 주변까지 번져 원전 안전이 위협받았다. 원전 내외부의 안전 문제에 대해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점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인수위가 고리 원전 가동을 연장하려면 우선 핵폐기물 처리 방안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등 원전 폐기물을 영구 보관·처리하는 시설은 지역민의 최대 관심사다. 몇 년간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던 문재인 정부는 영구 시설 마련 전까지 고리원전 내에 저장하기로 하는 ‘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을 추진해 지역민의 반발을 샀다. 고리원전 1~4호기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지난해 3분기 현재 83.8%이며 오는 2031년이면 100%에 달한다. 향후 10년 안에 원전 외 지역에 핵폐기물 저장 시설을 짓지 않는다면 부울경 지역이 영구 핵폐기물장이 될 수밖에 없다. 고리 1호기 해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원전해체연구소도 건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핵폐기물 대책 없는 원전 활성화는 화장실 없이 아파트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사능 농도가 높은 ‘위험한 쓰레기’를 처리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노후 원전을 가동시킬 수는 없다. 그동안 부울경 주민들이 원전 가동으로 고통받은 만큼 핵폐기물 시설은 다른 지역으로 분산해 건립돼야 마땅하다. 인수위는 노후 원전 가동에 대한 안전성, 원전 폐기물 처리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이 수십년째 불안에 시달려온 부울경 주민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